• 조선일보 12일 사설 '또 국민 실망시킨 이명박·박근혜의 정치력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0일 둘이서만 110분 가까이 만났다.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처음이다.

    지난주 한나라당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28.5%였다. 취임 직후의 지지율은 57.3%였다. 취임 6개월간 김영삼 전 대통령은 80%대, 김대중 전 대통령은 70%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60% 전후를 유지했다.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인 한나라당 지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선 당시 50%였던 것이 지금은 30%대로 급락(急落)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이런 지지율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국민의 동참(同參)을 이끌어내 경제를 일으킬 수도 없고,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헝클어진 사회질서를 새로 세울 수도 없다. 법률에 정해진 임명권 정도나 행사하는 것이 고작이다.

    대통령 지지도 하락(下落)원인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인사를 비롯한 무원칙한 인사에 따른 반발세력 증가, 거듭되는 정책 난조(亂調)와 실패가 불러온 국민 신뢰의 저하(低下), 그리고 집권당의 혼란스러운 모습과 연관된 정치 리더십 실종 등등을 들 수 있다. 집권당 역시 총선 전이나 총선 이후 친이(親李) 친박(親朴) 간의 공천 싸움과 친박 인사들의 복당 시비로 시종해 국민의 염증과 혐오감을 사왔다.

    이날 만남은 이런 대통령과 집권당의 위기상황 속에서 사태의 책임자와 당사자인 두 사람이 원인에 의견을 같이하고 타개책에 행동을 같이할 것인가가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박 전 대표는 회동에서 미국산 쇠고기 파동, 지지율 하락, 친박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 친박 인사 복당문제를 거론하며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 "검찰 수사가 편파적" "복당은 5월 말까지 결정나면 좋겠다"는 등 공세적 자세로 자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지지율 급락 등에 원칙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수사, 복당에는 이견(異見)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날 만남은 대통령 쪽으로부터 "박 전 대표가 너무 전투적"이라는 불쾌감의 표시와 박 전 대표 쪽에선 "이러려면 뭐 하러 만나자고 했느냐"는 불만만을 남긴 채 안 만난 것만도 못한 상황이 돼버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정치력이다. 정치력의 바탕 위에서만 국정 현안의 타개도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또 한 번 놓친 셈이다. 박 전 대표 역시 친박인사의 복당과 일부 친박인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데 열중해 계파 보스로서의 얼굴을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아직도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서로 상대에게 득(得)이 되는 것은 나에게 손(損)이고, 상대의 명분을 살려주는 것은 나의 명분을 잃는 것이라는 제로-섬(zero-sum)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끝내 이렇게 가면 국민들이 "그때가 위기 탈출의 절호(絶好)의 기회였는데…" 하며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혀를 차며 함께 후회하는 날이 오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