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의 18대 총선 공천을 둘러싼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강재섭 대표는 "당분간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대표직 사퇴를 시사하고 잠적했다. 김무성 최고위원은 "준비된 정치보복이다. 토사구팽 당하게 됐다"며 탈당 의사를 내비쳤다.
     
    당규 해석 놓고 대립
    "공천심사 당헌·당규대로" vs "그런 규정있는줄 몰랐다"


    이런 갈등은 그동안 당 경선 이후 '친박근혜-친이명박'으로 나눠져 공천시기, 공심위 구성, 공천기준 등을 두고 번번이 부딪히면서 쌓여온 '불신'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런 뇌관이 29일 정종복 사무부총장의 공천심사위원회 회의 결과 브리핑으로 폭발했다. 공천심사 기준으로 당규 3조 2항과 9조를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것. 한나라당 당규 3조 2항은 '뇌물과 불법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천을 받지 못하도록 했고, 또 9조는 '부정비리 등에 관련된 자'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등을 공직후보 부적격자로 명시했다. 

    이런 당규에 따라 지난 1996년 5월, 공용주파수통신(TRS) 사업자로부터 청탁과 함께 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특가법상 알선수재죄로 기소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김 최고위원은 공천신청조차 못하게 됐다. 그는 또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건넸다가 이듬해 3월 벌금형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정 부총장은 이날 "공천심사는 당헌·당규대로 하기로 했다"며 "뇌물수수 등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인사들은 공천 신청 자체를 배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30일 국회서 기자들과 만난 박근혜 전 대표는 '당규 3조 2항'에 대해 "그 규정이라는 게 작년 경선이 끝나자마자 정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규정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규정은 박 전 대표가 경선에 패배한 뒤 외부활동을 중단했던 지난해 9월, 이재오 의원 등의 요구로 제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재섭 "신의 버리는 정치 안돼", 김무성 "정치보복이닷! 탈당하겠다"
    지도부서도 의견 엇갈려

    하지만 이같은 발표에 그동안 당헌·당규를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강 대표는 "정치라는 것이 당헌·당규의 해석을 떠나 신의를 지키는 것"이라며 "이런 식이라면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당대표직 사퇴를 시사했다. 당사자인 김 최고위원은 "어제 공심위에서 실질적으로 결정된 것과 달리 정종복 의원의 발표는 다분히 의도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 부총장의 이같은 발표에 안강민 공심위원장은 "원칙만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일 뿐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했고, 한 공심위 관계자도 "왜 그런 발표가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30일 오전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최고위원은 "작년 경선 이후 열린 전국상임위에서 상식을 벗어난 당규 개정을 한 것은 준비된 정치보복이었다"며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는 회의 도중 문을 박차고 나왔고,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김형오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이 김 최고위원을 붙잡아 5분여 동안 독대했다. 이에 김 부위원장은 "공심위에서 (당규 적용에 대해)고민을 했다고는 하나 김무성 최고위원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있어 보인다"며 김 최고위원 편을 들었다. 전재희 최고위원도 "정치가 형식논리에 얽매여 정치논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맞지 않다"며 "당규 개정 등을 검토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공심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는 이방호 사무총장은 "(공심위 회의에서)공심위 위원장과 나를 뺀 9명 중에서 6명이 모두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따라서 어제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며 "당헌·당규 규정대로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공심위 결정을 존중하지만그 집행과정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당 화합을 위해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부분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학원 "위헌이다. 형평·당 화합 위해서도 온당치 못해"

    이 같은 당내 분란에 '친박'측 김학원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 문제는 전적으로 부당하다"고 비판하면서 "나는 나와 개인적으로 가깝고 노선을 같이해 왔다는 이런 것을 갖고 유·불리를 논하는 게 아니라 법과 당헌·당규에 입각한 해석과, 형평성과 화합이라는 큰 틀 속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심위 결정은 헌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고 형평성과 당 화합을 위해 온당치 못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