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유신 세대, 권력을 잡다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5년마다 어김없이 치러야 하는 대선, 그 권력에 대한 열병을 성장통처럼 앓은 뒤 맞는 성탄절 이브는 고요하다. 누구라도 작은 소망의 불빛을 나름대로 밝히고 추억 속의 행복을 되새기듯 ‘조용한 밤, 거룩한 밤’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잊었던 친구의 사소한 안부 인사와 은빛가루가 덮인 설산(雪山) 카드 풍경을 떠올리며 눈 뜨는 크리스마스 아침은 눈부시다. 희망의 등불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깜빡거리고, 그것을 켤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유별난 권력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의 삶을 규정하던 그 논리의 힘은. 소란하고 시끄러웠다, 가야 할 길을 밝혀주겠다던 그 외침은. 돌아보면 아득한 고산준령을 어찌 넘었던가 싶은데, 여행은 다시 시작되고 길은 멀다. 이번에는 50대가 나섰다. 현대사 60년을 감당하기엔 20, 30대는 너무 어리고, 치솟는 의욕에 스스로 눌려 좌충우돌했던 40대는 급기야 비틀거렸다. 혁명비를 세우기엔 공적이 없고, 송덕비를 만들기엔 인품이 모자랐다. 선거 전날, 마치 5년 전 노사모가 모바일 동원령을 내렸듯 50대 중년들이 자판에 익숙지 않은 손가락을 더듬거려 투표 전략을 송신했다. ‘알아서 하겠지?’라고. 그것은 70년대 학번의 문법이자 세대 경험을 상기시키는 부호였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표정만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중년 세대의 호소가 세대원의 레이더에 잡혔다. 유신 체제하에서 사회의식을 배양한 70년대 학번, 현재 50대 연령층인 이른바 ‘유신 세대’의 권력이 태어난 것이다.

    필자는 갓 태어난 이명박 정권을 이렇게 해석한다. 이명박을 만든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53세이고, 50대 지지율이 가장 높고, 50대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피해 의식의 원형이 50대의 인생 경험과 상동구조를 이루고, 다시 뛰고 싶은 국민의 재기 열망이 50대의 미래 전망에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 의식과 재기 열망, 이것은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는 국민의 공통적 정서이자 이번 대선 민심을 집약하는 말이다.

    유신 세대가 그랬다. 개발독재가 민주화의 꿈을 억눌러도 순진한 청춘들은 돌멩이 하나 들지 못했다. 독재에 바친 서러운 청춘이었다. 386세대가 이끈 저항 대열에 넥타이차림으로 가담하기도 했다. 비루한 청춘을 접고 떳떳한 장년을 설계하던 그들을 외환위기가 짓밟았다. 유신 세대의 절반이 손수 일군 기업에서 쫓겨나 ‘비정규직 가족’을 꾸렸다. 정리해고와 능력 위주의 레이스에 날아간 초라한 장년이었다. 50대는 절대 빈곤의 마지막 세대이자 공동체적 질서와 ‘자수성가’를 섬겼고, 고도성장의 수혜자이자 희생자였다. 생애 설계의 예측성을 높이고, 가족 부양의 짐을 덜어 주고, 무너진 중산층 자존심을 복원하는 것, 유신 세대의 이런 갈망이 올 대선 유권자들의 공통 코드로 확산되었고, 이명박 당선자가 상징 인물로 부상했다. 그것은 이념 투쟁이 아니라 ‘경험 투쟁’,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평균적 가치관의 복원 투쟁이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거둔 압승의 본질이 이렇다면, 이명박 표에 보수 결집이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것이 편리할지는 몰라도 지지자들의 진심을 잘못 읽을 우려가 있다. 자수성가의 기회를 넓혀 주고, 교육이든 경제든 노력하면 돌아온다는 믿음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20대 ‘알바 세대’를 착취의 세계에서 구출하는 것, 아직도 활력이 넘치는 명퇴 세대에게 ‘제3의 인생’을 보장하는 것, 그것을 위해 40대·50대가 원 없이 뛰는 것, 그렇다면, 가족 행복과 국민 성공은 다른 말이 아니다. 그것을 합치면 평균적 가치관이 되고 진정한 표심이 된다. 새 정권이 내건 ‘실용정부’란 그런 표심에 부응한다는 약속일 것이다.

    유신 세대는 빈곤 세대(60년대)와 혁명 세대(80년대)를 잇는 연결고리다. ‘어떤 성장이어야 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성장신화에 복무하면서도 전태일에게 빚진 세대이며, ‘사회정의론’을 탐독했던 세대다. 그러나 오늘은 일단 접어 두자. 시대가 어두울수록 가슴은 활화산이었다는 것, 가난으로 찌든 주머니엔 현실 비판의 언어가 빛났다는 것, 세계와 부닥쳐 보겠다는 오기로 충만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래서인지 동네 어귀 작은 교회당에서 울리는 성탄절 종소리가 유난히 은밀하게 들렸던 유신 세대의 추억이 오늘 아침엔 새삼 떠오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