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의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

     
     

  • 차별적이고 대치(代置) 불능한 ‘안철수의 생각’ 즉 그의 정체성 같은 건 이제 없어졌다. 

    아니, 그는 단일화 합의 이전에도 그런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합의문은 “철학과 가치를 같이하는...” 이라는 투의 문구를 담고 있다. 선거연대 정도를 넘어 철학과 가치를 함께 하겠다니, 이쯤 되면 문재인 안철수의 악수는 사상적 융합까지 의도한 셈이다.

    물론, 문재인과 386 민주당, 또는 노빠 민주당이 안철수한테 녹아드는 식의 단일화가 되면 그건 곧 안철수적 정체성이 지배하는 야권통일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86과 노빠의 NL(민족해방) 세력이 ‘철수 생각’ 따위에 녹아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안철수로 단일화가 되어 선거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청와대 말고는 적어도 국장급 이하 실무진은 온통 NL 판이 될 것이다. 안철수에게는 네트워크도, 인력도, 조직도, 떼거지도 없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안철수 류(類)의 ‘강남좌파’는 원래 운동 사령탑 투사들을 위해 불쏘시개 역할, 또는 병참부대 역할이나 하는 급(級)이다. 안철수 류는 말하자면 ‘진짜배기’의 길을 닦아주는 전단계(前段階)의 외곽 동조자(씸파, sympathizer) 그룹에 해당한다.

  • 그러니 그가 “이x도 싫고 저x도 싫다”며 ‘이제는 바람 잡는 소리로 판명 난’ 썰을 거두고 노빠, 386 진영과 ‘철학과 가치’까지 함께 하기로 한 것은 이미 초장에 예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면극이 끝나고 맨 얼굴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맨 얼굴 파티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한반도적 현실의 적나라한 대치선이 그간의 연막을 벗어나 생생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NL적 체제전환이냐, 아니면 대한민국 정체성 유지냐의 숙명적인 대결이 그것이다.

    '제3 세력' 운운은 바람몰이를 해준 다음 스스로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진짜배기인 ‘체제전환을 위한 통일전선’이 등장하려 하고 있다. ‘2013년 체제’를 호언하는 ‘알짜’가 들어설 판이다. 안철수로 단일화가 되어도 이건 마찬가지다.

    박근혜와 그 주변이 이런 현상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리고 역사적 위기감을 가지고 체감할지는 의문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은 이런 싸움은 잘 모른다. 아니, 그런 걸 우습게 여기는 경향마저 있다. 그저 ‘일자리’ 당근수사학으로 2030이나 꼬시면 되었지, 까짓 이념적, 가치론적, 체제론적 싸움 운운이 무슨 태고적 고리타분한 '올드 송'이냐는 식이다. 

    유권자엔 2030 밖엔 없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니 박근혜 쪽이 조금은 답답해 보여서 지껄여 본 소리다.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기 바란다. “너 같은 소리는 애초부터 신경 안 썼다”고 하겠지만-.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aestheicisic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