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문엔 호랑이, 뒷 문엔 늑대가 동시에 닥친 격!
    1. '한, 중 수교 20년'의 무거운 그림자

     

    "한국은 언제까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는 한 한국은 2류 국가 대접을 받을 것이다."

  • 한-중 수교 20년을 맞은 시점에서 있었던 양국 전문가들의 ‘한중 안보전력 회의’라는 세미나에서 중국 측 참가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1류 국가가 된다는 뜻일 리는 없고, 한국은 마땅히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일 게 뻔하다.

    웃기는 소리다. 한국이 핵무장도 못한 상태에서 미국의 핵우산마저 벗어나면 한국은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나가떨어질 것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한미동맹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한국을 어쩌지 못한다. 우리가 만약 핵을 보유했다면, 우리의 입지는 중국 사람이 말한 의미의 군사적 1류 국가 반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거나 못하면서 한미동맹, 특히 미국의 핵우산을 벗어나면 중국은 한국을 2류 국가 대접은 고사하고 3류, 4류, 5류 국가 취급을 할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중국과 일본은 역시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그야, 되도록이면 그들 나라와 국민들하고 잘 지내야 한다. 서로 너무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천 년을 두고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역사적 패턴(pattern)은, 한반도는 대륙 중원(中原)과 일본의 패권다툼이 맞닿는 접전(接戰)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그 싸움에서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국가와 한반도 인(人)들을 대등한 파트너로서 진정으로 존중해 준 적이 없다.

    20세기 후반~21세기 초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해서 한미동맹의 뒷받침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부터 한반도 국가와 한반도 인들은 역사상 거의 최초(?)로 중국과 일본의 외형상의 정중한 대접이나마 받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던 중국이 다시 고압적인 옛 패권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도 갈수록 국수주의로 되돌아가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그리고 한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판단에서, 중국은 이제는 한반도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엄호(掩護)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자기들의 옛 전통적인 그림자를 다시 드리우려 하고 있다. 중화(中華)주의적이고 비(非)계몽주의적인 ‘동방적 전제(東方的 專制, oriental despotism)'의 영향권을.

    이 상황에서, 중국의 진출을 경계하는 일본은 독도(獨島)를 놓고 우리에게 적의(敵意)를 드러내고 있다.

    앞문 앞엔 호랑이, 뒷문 앞엔 늑대가 동시에 닥친 것인가? 이건 냉엄한 현실인가, 지나친 신경과민인가? 쓸데없는 신경과민이길 바라지만, 과장 아닌 현실 또는 잠재적 현실이라면 한국, 한국인들은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내적으로는 “중국은 갑(甲)이고 우리는 을(乙)이니 그런 중국에 대고 감히 김영환을 왜 고문했느냐고 따지지도 말자는 식의 공공연한 신판 이소사대(以小事大,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다) 소리가 들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국제정치적 난세(亂世)엔 관심조차 없다. 새누리당은 역사인식의 백지 상태이고, 또 다른 일부는 탈미친중(脫美親中, 미국을 벗어나 중국으로 가자)는 성향이다.

    현대정치에서 영웅의 출현은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에 갇히지 않고 동북아 판세를 보는 ‘큰 정치인’의 형안(炯眼)만은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과 불화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중국과는 좋으나 싫으나 잘 지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과감한 자주국방과 강화된 한미동맹에 힘입어 한중 관계를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꾸릴 줄 아는 국제정치의 달인(達人), ‘강한 한국’의 기수(旗手)만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중원에 짓눌려 있는 식물적 상태나, 핀란드 화(化)는 평화도, 선린(善隣)관계도 아니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