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권서 두 번 사면? 매우 이례적!"입당 3달만에 경선 1위 상식적으로..
  • ▲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오른쪽) 당선자가 지난 2003년 6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결성, 활동한 죄로 복역중 특별휴가로 출소해 민혁당 결성의 핵심이었던 하영옥씨와 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자료사진)
    ▲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2번 이석기(오른쪽) 당선자가 지난 2003년 6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결성, 활동한 죄로 복역중 특별휴가로 출소해 민혁당 결성의 핵심이었던 하영옥씨와 껴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연합뉴스(자료사진)

    # 노무현 정부 때 2번이나 '광복절 특사'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번에 걸쳐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조선일보>가 19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법조 관계자들을 인용, "한 정권에서 두 번이나 사면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당선자는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광복절 특사 때 가(假)석방된 후, 2년 뒤인 2005년 광복절 특사 때 특별복권(復權)을 받았다. 특별복권으로 공무담임권 및 피선거권의 제한이 풀리면서 국회의원 후보 등 선출직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특별사면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이 특별사면 대상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법무부가 실무를 진행한다. 이 당선자에 대한 두 번의 광복절 특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었다. 법무장관은 2003년엔 강금실 변호사, 2005년에는 천정배 통진당 의원.

    이 당선자는 2003년 광복절 특사 대상자 15만여명 중 유일한 공안사범이었다.

    이 당선자는 북한과 연계해 우리 정부의 전복을 기도하는 반(反)국가 단체로 법원이 판단한 민혁당의 서열 5~6위쯤에 해당하는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이 당선자는 1999년 민혁당 사건 수사 때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 3년쯤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2년 5월에야 체포됐다. 그는 2003년 3월 21일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6일 만에 이를 취하하고 징역형을 받아들였다. 당시 이 씨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쪽에서 기결수는 확실히 사면할 의지가 있다 해서 상고를 취하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나 법무부 쪽에서 그에게 '사면해주겠다'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는 "공안사범은 원칙적으로 제외했으나 민혁당 공범들이 4·30 특별사면 때 모두 석방된 점을 참작해 형평성 차원에서 가석방하게 됐다"고 밝혔다.

  • ▲ 이석기 블로그 동영상 캡처 화면
    ▲ 이석기 블로그 동영상 캡처 화면

    # 통진당 들어간지 3달만에 '경선1등'

    이 당선자가 지난 3월 실시된 비례대표 순위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두고 '기획 입당'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CBS>가 통진당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입당한 지 얼마 안 돼 경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1등이 된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종하거나 지시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통진당 관계자 A씨

    "본인 입으로 진보정당 운동을 오래 해왔다고 해서 당연히 민노당 시절부터 당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너무 당황스럽다" -통진당 관계자 B씨

    이 당선자는 지난해 12월 27일 통진당에 공식입당했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는데 불과 3개월여만에 ‘엄청난 기적’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그는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입당 경력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다음과 같은 출마선언문을 밝혔고 <CBS>는 "'새내기' 당원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나는 90년대 오래 전부터 진보정당 건설노선을 주창했다. 본격적인 당운동을 예비하며 당의 지역적 토대를 강화하는 등 당운동의 초석을 다져온 것이 90년대"라고도 강조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노선을 초기부터 일관되게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