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용지 부족 … 통째 오염된 6·3 지선출구조사·개표 후에도 투표 … 지퍼백 용지도野 "투표권·참정권 훼손 심각 … 재투표해야"'선거 무효' 獨 베를린 사태, 서울서 재현되나
-
- ▲ 잠실7동 관내 후보들이 투표가 마무리된 3일 오후 8시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못한 유권자들이 다수 발생하자 현장을 찾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6·3 지방선거가 사상 초유의 '투표지 부족 사태'에 휘말리면서 선거 자체의 정당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 출구조사 발표 이후에도 투표가 이어지면서 서울 재투표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4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 투표소에서는 본투표 마감 직전 투표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가 오후 10시까지 계속됐고, 강남구·광진구·송파구 등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지가 소진되면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장시간 줄을 서는 혼란이 벌어졌다. 긴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선 유권자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투표 종료 시각을 넘긴 뒤에도 대기 중인 유권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현장 혼선이 이어졌다. 부족한 투표지를 지역 선관위가 지퍼백과 종이봉투에 담아 긴급 이송한 뒤 투표를 재개하면서 이른바 '지퍼백 투표지' 논란까지 불거졌다.논란이 커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선관위는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 용지가 부족해졌으며 추가 용지를 긴급 이송했다는 입장이다.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전날 오후 경기도 과천 선관위에서 "선관위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즉시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로 투표지를 이송했으며 해당 투표소에서 대기 중인 유권자는 마감 시각이 지나더라도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안내했다"고 밝혔다.문제는 투표지 부족 사태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선거 절차 자체를 흔들었다는 점이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마감 시각을 넘긴 뒤에도 투표가 계속됐고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 방송이 공개된 상황에서 투표가 진행되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피해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방선거는 여러 선거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투표지 부족으로 발생한 표의 공백이 서울시장 선거는 물론 구청장·지방의원·교육감 선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 영향을 사후적으로 입증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선거 관리 실패가 아닌 선거 정당성 훼손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투표를 원했던 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면 선거 결과와 별개로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온다.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미 서울시의 선거는 오염된 선거"라며 "유권자의 투표권, 참정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비판했다.그는 "이미 투표의 공정성은 깨졌다. 오염된 선거는 무효"라며 "유사한 사례가 발생한 지역에 대해서는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 ▲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3일 오후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6·3 지방선거 본투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개혁신당도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인 만큼 서울시장이 아닌 다른 선거에서는 어차피 부족한 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출구조사가 보도된 뒤에 한참 동안 그 투표들이 진행된 것 자체가 투표가 왜곡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수백, 수천표 단위로 용지 부족이 발생했다면 그 자체로 어떤 개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정치적 의미가 크다"며 "개표를 우선 중지하고 중앙선관위원들이 긴급 회의를 소집해서 이 상황에 대한 공식적인 판단 및 지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실제 외국에서는 투표지 부족과 선거 관리 부실이 선거 무효 판단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독일 베를린 선거다. 당시 베를린에서는 연방하원 선거와 지방선거, 주민투표가 동시에 실시됐는데 선거 당국의 준비 부족으로 투표지 오배송과 부족 사태가 잇따랐다.일부 투표소는 투표지가 떨어져 운영을 중단했고 법정 투표 시간을 넘겨 투표가 계속 진행됐다.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된 이후에도 투표가 이뤄졌다는 논란도 제기됐다.유권자들은 장시간 대기 끝에 투표를 포기하거나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선거구의 투표지를 받는 일까지 겪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부족한 용지를 복사해 사용한 사실도 드러났다.결국 야권은 선거 무효 소송에 나섰고 독일 법원은 선거의 기본 원칙이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베를린주 헌법재판소는 "수천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지 못했거나 유효하게 투표하지 못했다"며 지방선거 전체를 무효로 결정했다. 연방헌법재판소도 문제 발생이 확인된 선거구의 총선 결과를 취소하고 재선거를 명령했다.법원은 특히 투표지 부족으로 투표소 운영이 중단된 점을 중대하게 봤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대기 도중 투표를 포기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선거 결과를 바꿀 정도의 표 차가 아니더라도 선거 절차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면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재선거 결과 정치 지형도 뒤바뀌었다. 2023년 실시된 베를린 지방선거 재투표에서는 기존 패배 정당이 승리하면서 시의회 다수당이 교체됐고 시장도 바뀌었다. 이어 진행된 총선 재선거에서는 연방의회 의석 분포까지 변동됐다.베를린 사례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유권자의 투표권 침해와 선거 절차 훼손이 확인될 경우 선거 결과 자체가 뒤집힐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한편 공직선거법은 예외적 상황에서 선거 연기와 재투표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96조는 천재지변이나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관할 선관위원장이 지방자치단체장과 협의해 선거를 연기하도록 하고 있다.제198조는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어느 투표구의 투표를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당해 투표구의 재투표를 실시한 후 당선인을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