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3737억 요구했지만 1600억원 삭감… 정기현 "정부, 기부금 자기 돈인 양 검증"정부 "예산 삭감 논란 사실 아니다" 부인… "2026년 준공 차질 없게 하겠다" 설명
  • ▲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신종감염병 의료대응의 현실과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위한 국회 연속 심포지엄' 1차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신종감염병 의료대응의 현실과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위한 국회 연속 심포지엄' 1차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국립중앙의료원에 기부한 7000억원의 기부금 활용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회장의 기부금을 이유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이를 부인하며 오는 2026년까지 준공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는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위한 국회 연속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환영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몇천억 들어오자 내년 병원 재건축 예산 1630억원 삭감"

    정 원장은 "몇천억 들어왔다고 온갖 이해관계자들이 불나방처럼 붙고, 기획재정부는 기부금을 자기 돈인 양 검증하겠다고 나서는데, 보건복지부의 정책 의지는 실종된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 유족들이 기부금을 낸 뒤 이 돈의 활용 방안을 놓고 부적절한 논의가 이뤄진다는 주장이다.

    정 원장은 또 "하루빨리 중앙감염병병원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 공허한 약속으로 휴지 조각이 돼 가고 있다"면서 "행정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이라는 근사한 건물을 껍데기처럼 지어 놓고 생색낸다고, 으리으리한 건물 하나 더 만든다고, 음압병상 50개 더 늘어난다고 국가 감염병 대응 역량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부금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 등 감염병 대응 수준을 근본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쓰여야 하는데,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못한 상태에서 기획재정부가 거액의 기부금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내년도 예산안에서 건물 설계비를 전액 삭감하는 등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 기부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의 건립을 약속한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세계를 선도하는 감염병 대응 기관과 체계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 위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한 정 원장은 "그러나 지금은 행정이 의료를 압도해서 의학적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대로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이 설립된다면 그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 하나에 그치게 될 것이다. 겉으로만 번들거리는 건물은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 지난 4월 7000억원 기부… 4개월 넘도록 위원회조차 꾸려지지 않아

    이 회장 유족은 지난 4월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연구를 위해 써 달라며 7000억원을 기부했다. 150병상 이상 규모의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병원을 지어 달라는 취지였다.

    이에 보건복지부·질병청·국립중앙의료원은 5000억원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하고, 나머지 2000억원은 감염병 연구에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4개월이 넘도록 정부는 해당 기부금을 관리할 위원회조차 꾸리지 않았다.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중앙의료원은 2022년도 예산안으로 감염병전문병원 건립과 관련해 3737억8000만원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심의 과정을 거치며 예산을 1600억원이나 삭감했다.

    복지부 "예산 삭감은 당국의 재정상황 때문"

    정부가 삼성 측의 기부금을 이유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직접 해명에 나섰다.

    복지부는 2022년도 예산안 발표에서 앞서 지난달 30일 박민수 기획조정실장의 사전 설명회 답변을 통해 "감염병전문병원 예산 삭감 논란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는 2026년까지 준공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기재부가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은 금액은 1629억8000만원이다. 이 가운데 1610억원은 중앙의료원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의 부지 매입대금이다. 그 외 중앙의료원 설계비·시설부대비 10억원,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구축사업 예산 2억5000만원 등도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박 실장은 "부지 매입비가 당초 요청보다는 적게 잡혀 있는데, 이는 삼성전자 기부금이 들어왔기 때문에 예산을 삭감한 형태가 아니다"라며 "재정당국의 재정상황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내년도 예산에서 부지 매입비가 줄어든 것과 관련해서는 "2023년까지 부지 대금을 완납하면 부지를 매매하는 데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