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NSC보좌관 "싱가포르 합의는 김정은의 사기… 트럼프, 이해 못하는 것 같았다”
  • ▲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선언문에 서명하는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선언문에 서명하는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낚였다(hooked)”고 주장했다. 미북 비핵화 외교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 소망을, 김정은은 자신이 당초 원했던 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북 비핵화 외교를 “한국이 주도한 외교적 판당고(fandango)”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 낚였다”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김정은과 회담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낚였다(hooked)”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감언이설에 속아 단거리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을 허용하게 된 것이라고 CNN, ABC 등이 18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회고록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합의 가운데 “다시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김정은의 사기였다고 지적했다. 핵실험과 ICBM만 쏘지 않을 뿐 단거리미사일 발사 등은 전혀 제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 미북 합의에서 김정은의 약속이 ‘브루클린 다리 판매(사기를 지칭하는 속어)’였는데도 트럼프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비판했다. 

    지난해 북한이 다양한 단거리 무기를 시험한 것을 두고 볼턴 전 보좌관은 “김정은은 (싱가포르 합의 덕분에) 트럼프 대통령과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5월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쏘았을 때 ‘저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곤란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개인적 관심 때문에 김정은과 만났다”

    인권문제로 북한 세습독재정권을 혐오하는 볼턴 전 보좌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추진은 악몽이었다. 그는 “우리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사령관인 김정은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자유로운 회담을 제공함으로써 그를 정당화했다”면서 “김정은을 만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의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의 폭로는 이어졌다. ABC는 볼턴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원했던 것을 얻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원한 것을 가졌다”며 “이는 대통령이 개인적 관심을 국가적 관심보다 더 우선한 사례”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대표적 사례가 엘튼 존의 친필서명이 든 ‘로켓맨’ CD를 김정은에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이 CD를 선물로 보내 친근감을 보이려 애썼고, 이 선물 전달이 한동안 국무부 정책 최우선 순위에 올랐다”며 “결국 그 선물은 제재면제 조치를 받았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폭로했다.
  • ▲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의 아마존 판매 모습. ⓒ아마존 북 화면캡쳐.
    ▲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의 아마존 판매 모습. ⓒ아마존 북 화면캡쳐.
    오사카 G20 정상회의 직후인 지난해 6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난 것과 관련해서도 볼턴 전 보좌관은 “그 만남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는 거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며 “사진 촬영과 언론 반응에 더 신경을 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적 이익과 국익을 구분할 줄 몰랐다”고 비판했다고 ABC는 전했다.

    "미북 비핵화 외교는 한국의 기획…이건 ‘판당고’"

    CNN은 18일 “볼턴 전 보좌관은 미북정상회담이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접근전략을 진지하게 살펴보기보다 한국의 ‘통일’ 아젠다와 더 많이 관련돼 있었다고 지적하며, 미북 비핵화 외교 자체를 ‘판당고’라 불렀다”고 보도했다.

    ‘판당고’는 캐스터네츠를 들고 추는 스페인 서민들의 전통춤을 말한다. 플라멩고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 속어로는 멍청하고 쓸모없는 행동, 특히 정치인의 치적 홍보용 쇼를 의미한다. 

    미북 비핵화 협상이 북한의 요구를 채워주기 위해 한국 정부가 기획한 사실상의 쇼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개인적 이익을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는 것이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이다.

    이 같은 미북 비핵화 외교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또한 부정적이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폭로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때 “합의 내용을 상원에서 비준받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자 폼페이오 장관이 “그는 완전 거짓말쟁이(He is so full of shit)”라고 적힌 쪽지를 자신에게 건넸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밝혔다.

    당시 청와대와 친문세력은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나온 것을 두고 “남·북·미의 위대한 승리” “세계사적 사건”이라며 칭송했다. 

    그러나 “북한 문제를 이런 식으로 끌고 가면 국내 여론이 악화할 것”이라는 참모들의 비판에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판을 깨버린 것 또한 미북 비핵화 협상이 모두 홍보용 쇼였다는 볼턴 전 보좌관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있었던 방: 백악관 회고록>은 오는 23일부터 미국 시중 서점에서 판매된다. 아마존 북스 등에서는 이미 예매율 1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