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기념회 주최 세미나… "3·1운동 즈음해 서재필·이승만 주도, 임정·제헌에도 큰 영향"
  • ▲ 안병훈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이 지난 9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 안병훈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이 지난 9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이기륭 기자
    “미국 필라델피아 만세운동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제정, 이후 정치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안병훈 서재필기념회 이사장)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미국 필라델피아 만세 운동'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세미나가 9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서재필 기념회가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서재필과 미국에서의 3·1운동-필라델피아 만세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안병훈 서재필기념회 이사장은 이날 "미국 필라델피아 만세운동은 서재필, 이승만, 정한경 3인의 이름으로 낸 초청장을 받고 미국 각지에서 모인 150여명의 인사들이 각종 결의안을 채택하며 전개한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세미나에는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와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택휘 전 서울교육대 총장이 진행했다.  
  • ▲ 지난 9일 서재필기념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유영익 교수.ⓒ이기륭 기자
    ▲ 지난 9일 서재필기념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유영익 교수.ⓒ이기륭 기자
    상해 임정 등에 영향… 서재필, 이승만, 안창호 역할 커
    이날 세미나는 '필라델피아 만세운동'의 ‘기점’에 해당하는 대한인총대표회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대한인총대표회의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4~16일까지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서재필 주재로 이뤄진 이 회의에는 이승만, 정한경, 장택상, 조병욱 등이 참석했다. 

    유 교수는 "서재필과 이승만은 회의 이후 1922년 2월까지 공조하면서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미국 각지에서 모인 150여명의 교민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하는 방식으로 대한의 독립을 알렸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회의에서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이라는 결의안이 나왔는데, 상해 임시정부에서 1919년 8월 중순부터 9월 6일까지 신익희 주도 하에 추진된 제1차 헌법개정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 ▲ 지난 9일 서재필기념회 주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명섭 교수.ⓒ이기륭 기자
    ▲ 지난 9일 서재필기념회 주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명섭 교수.ⓒ이기륭 기자
    이승만 영문 일기에 '필라델피아 회의' 내용
    김명섭 교수는 "필라델피아 대한인총대표회의를 1919년 3·1운동의 연장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나, 3·1운동 전인 2월부터 회의가 계획됐다"고 말했다. 당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던 이승만은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에 오는 시점에 맞춰 퍼레이드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 근거로 김 교수는 1919년 2월 13일자 이승만의 영문일기를 들었다. 이 기록에는 3·1운동에 앞서 필라델피아 회의가 준비되고, 서재필과 이승만이 관련 서류를 회람시켰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교수는 또 대한인총대표회의 주체로 참여한 서재필, 이승만, 안창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며 “(안창호가 이끈) 대한인국민회를 빼놓고 회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안창호의 대한인국민회가 미국 교민들의 조직화에 전념했기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150여명이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진행을 맡은 이택휘 전 총장은 “이번 세미나가 미국 필라델피아 만세 운동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