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구소련, 중국보다 40년 앞서 '달 뒷면' 착륙'… 군비경쟁 벌이다 소련 무너져
  • ▲ 中정부가 공개한 창어-4호의 탐사로버 '옥토끼'.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中정부가 공개한 창어-4호의 탐사로버 '옥토끼'.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이 쏘아 올린 무인 탐사선 ‘창어-4호’가 3일 오전 10시 26분 달 뒷면에 착륙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은 “중국이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했다”고 대서특필했다.

    中국가항천국은 4일 “창어-4호에 탑재한 탐사로봇 ‘옥토끼’가 현재 달 표면을 탐사 중”이라고 전했다. 해당 영상은 달 공전 궤도에 있는 통신위성 ‘췌차오(오작교)’를 통해 중계됐다고 한다. 한국 언론들은 “역사적인 첫 발자국을 달 뒷면에 남겼다”는 中국가항천국의 말을 그대로 내보냈다. 언론 보도만 보면 중국 탐사선이 인류 최초로 달 뒷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최초인 것은 달 뒷면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것뿐이다.

    中‘창어-4호’의 달 뒷면 착륙은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바로 미국의 우주개발 의지에 불을 댕겼다는 점이다.

    50년 전 인류의 달 탐사 기록

    인류의 달 탐사가 시작된 것은 1959년부터다.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스푸트니크 1호를, 미국이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면서, 미소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됐다.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첫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 발사에 성공하고, 미국은 5월 5일 프리덤 7호(머큐리 레드스톤 3호)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이후 우주개발 경쟁은 유인 우주선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사이 미국과 소련은 달 탐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미국은 1958년 8월 17일 발사한 파이오니어 1호를 시작으로 1965년 3월 21일 레인저 9호까지 18대의 달 탐사선을 발사했다. 소련은 1959년 1월 2일 루나 1호부터 1965년 12월 3일 루나 8호까지 10대의 탐사선을 달에 발사했다. 그러나 성공률은 낮았다. 소련은 2번, 미국은 3번밖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당시 기술로는 지구에서 38만 4000킬로미터 떨어진 달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 ▲ 50여 년 전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로 및 착륙 지점.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50여 년 전 미국과 소련의 달 탐사 경로 및 착륙 지점.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유인 우주선 개발이 일정 궤도에 오른 뒤에도 미소의 달 탐사 경쟁은 계속 됐다. 다음 목표가 유인 달 탐사였기 때문이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미소는 보다 높은 수준의 탐사선을 달로 보냈다. 소련은 5대, 미국은 7대의 탐사선을 달에 보냈는데 1966년 5월 30일 발사한 미국의 서베이어-1호는 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고, 1967년 4월 20일 발사한 서베이어-3호는 로봇 팔을 이용해 달 표면에서 작업을 벌였다.

    소련의 루나-9호와 루나-13호는 달에 착륙한 뒤 수많은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소련이 1970년 9월 12일에 발사한 루나-16호는 달에 가서 100그램의 표면 샘플을 채취한 뒤 이를 갖고 지구로 귀환했다. 같은 해 11월 10일 발사한 루나-17호는 최초로 달 표면 탐사용 로봇을 탑재하고 착륙했다. 달 공전궤도에 위성을 띄운 것도 미국이 처음이었다. 미국은 1966년 8월부터 1967년 8월까지 루나 오비터 1호부터 5호까지 발사했다. 다만 용도가 中통신중계위성 ‘췌자오’와 달리 달 표면을 탐사하는 위성이었다.

    1970년 들어 소련은 달에 계속 무인 탐사선을 보낸 반면 미국은 사람이 직접 갔다. 1969년 7월 21일 아폴로-11호에 탄 우주인들이 달에 내린 것이다. 당시 아폴로 우주선은 3단 짜리 ‘새턴 Ⅴ’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3단 로켓 위에는 사령선과 착륙선이 탑재돼 있었다. 이들은 초속 11.9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지구 공전궤도를 벗어나 38만 킬로미터를 날아갔다. 달 공전궤도에 도착한 뒤 사령선은 달 주변을 돌고 2명만 착륙선을 타고 달에 내려갔다. 닐 암스트롱 선장과 버즈 올드린 달 착륙선 조종사가 인류 사상 최초로 달을 밟은 사람이 됐다.

    미국은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까지 발사한 뒤 달 탐사 계획을 중단했다. 이후 1975년에도 아폴로 우주선들이 발사됐지만 이는 ‘아폴로-소유즈 실험 계획’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ASTP’라고 불렀다. 1981년 4월 12일 우주왕복선(STS)가 첫 발사된 뒤부터 미소 간 우주개발 경쟁 열기가 시들었다.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에는 우주개발이 외면당하다시피 했다. 그 이유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미소 우주개발 경쟁은 과학적 측면보다는 체제 선전 성격이 강했고, 양국 정치인들은 달 착륙과 아폴로-소유즈 실험 계획, 우주정거장 계획 등으로 더 이상 선전 효과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2025년 무인 달 기지

    중국이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에 나선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03년 10월 15일 中공군 조종사가 탄 유인 우주선 ‘선저우-5호’가 지구궤도를 21시간 동안 공전한 뒤 귀환했다. 그 이전 중국의 우주개발이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20세기 말까지 적지 않은 나라들이 자력으로 우주 발사체를 개발·발사한 상태여서 인공위성 발사만으로는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중국은 이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것이다.

  • ▲ 중국 최초 우주정거장 '텐궁-1호'. 2011년 9월 발사했는데 2018년 4월 추락했다. ⓒ유럽우주국(ESA) 공식블로그 캡쳐.
    ▲ 중국 최초 우주정거장 '텐궁-1호'. 2011년 9월 발사했는데 2018년 4월 추락했다. ⓒ유럽우주국(ESA) 공식블로그 캡쳐.
    중국은 경제가 성장하자 체제 선전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이부었다. 우주개발도 사실 그런 측면이 강하다. ‘창어-5호’ 이후 中공산당은 우주개발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 2011년 9월에는 우주정거장 ‘텐궁-1호’를, 2016년 9월에는 ‘텐궁-2호’를 쏘아 올렸다. 그 사이에 자체적인 지구위치정보체계 ‘베이두(北斗)’용 위성 수십여 개도 궤도에 올렸다. 때로는 한꺼번에 20개가 넘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우주개발 의지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에게 강력한 자극이 됐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2017년 1월 집권 직후 우주개발의 부활을 준비한다. 그 또한 우주개발이 미국인의 자존심과 직결된다고 봤다. 2017년 10월에는 ‘국가우주위원회(NSC)’를 설립했고, 이때 유인 달 탐사계획의 부활을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화성을 향했던 美항공우주국(NASA)의 개발 목표도 달로 선회했다. 트럼프 정부는 2025년까지 4~5명이 6개월 씩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초기에는 물과 공기, 식량을 지구로부터 공급받지만 시간이 흐르면 영화 ‘마션(Martian)’의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자급자족한다는 계획도 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또한 국방부에 2020년까지 우주군을 창설하라고 명령했다. 미국이 대부분의 비용을 대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경우에는 “2024년까지 민영화를 준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우주와 관련해 내리는 명령은 모두 ‘미국우선주의’와 연관이 있다. 달 유인 기지 건설이나 우주군 창설은 미국의 압도적 힘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고, ISS 민영화 주장은 미국 우주개발에 힘써야 할 NASA가 세계 공용이나 다름없는 ISS의 유지보수에 매년 예산의 20%인 30억 달러(한화 약 3조 3700억 원)를 쏟아 붓는 게 싫다는 의미다. 이 돈이면 미국인의 자존심을 되살릴 우주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다.

    트럼프, 레이건처럼 우주역량 살릴까

    트럼프 대통령의 우주개발 의지를 보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前대통령이 미국의 국방력을 되살리려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건 前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레이건 前대통령은 1981년 1월 취임 이후 미군을 살펴본 뒤 전면적인 개혁에 나선다. 베트남에서 철수한 뒤 카터 정권을 거치면서 미군은 ‘종이호랑이’ 꼴이 돼 있었다. 레이건 前대통령은 전면 핵전쟁을 전제로 한 각 군 편제, 전략 핵무기 개발부터 육군 보병 장비에 이르기까지 국방 분야 전면을 개혁했다. 레이건 前대통령은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미군을 몇 년 안에 강군으로 만들었다. 미군의 저력을 자극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미군 내에서는 1991년 2월 걸프 전쟁의 승리도 레이건 前대통령의 국방력 강화 덕분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 ▲ 美항공우주국(NASA)이 구상하는 달 유인영구기지의 상상도. ⓒ美NASA 일러스트 캡쳐.
    ▲ 美항공우주국(NASA)이 구상하는 달 유인영구기지의 상상도. ⓒ美NASA 일러스트 캡쳐.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우주위원회를 설립하고, 우주군 창설을 명령한 것, NASA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NASA 국장 출신을 국방차관에, 미사일 방어계획(MD)에 관여했던 민간인을 국방장관 대행에 앉힌 것은 우연이 아니어 보인다.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는 ‘우주’와 ‘첨단무기’다. 미군이 창설하려는 우주군에게는 레이저 같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와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 발사체, 대륙간 극초음속 항공기, 우주 유인기지가 매우 중요하다. 즉 우주개발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미국은 이 가운데 일부 분야를 민간에게 맡기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테슬라 모터스’로 유명한 엘런 머스크의 ‘스페이스 X’가 대표적이다. ‘스페이스 X’는 몇 년 전부터 美공군의 기밀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상에 올리는 업무를 맡고 있다. 50년 전에 이미 달 탐사를 했던, 40년 전에 화성과 금성을 탐사했던 저력을 되살린다면 미국이 다시 한 번 우주개발 최강국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기에 민간 분야까지도 미국이 주도한다면, 우주는 곧 미국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中공산당은 ‘창어-4호’를 달에 착륙시킨 뒤 의기양양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의 저력, 민간 우주기업의 무서운 기술개발 속도, 유럽과 일본의 우주개발 계획 등을 보면, 중국이 우주의 패자(霸者)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