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 병원 '연구비 횡령' 적발됐는데도 "자체조사 보고 판단하겠다" 황당 답변
  • ▲ 1000억원 규모의 세금이 투입되는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픽사베이
    ▲ 1000억원 규모의 세금이 투입되는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픽사베이
    정부가 국비를 들여 진행 중인 연구중심병원의 지정 및 사후관리 기준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일부 병원에서 연구비 횡령 등의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부처 차원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5일 복지부와 업계에 따르면 K대 의료원 산하의 A병원 의료기기중개임상시험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있던 B교수는 임상시험 관련 연구비 착복과 시험 대상자 부풀리기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 4월 K대 의료원 감사팀의 자체조사를 받았다. 

    K대 의료원 A병원 센터장, 연구비 횡령 의혹

    B교수는 센터장의 지위를 이용해 제약사로부터 수주한 임상시험 연구자금을 횡령하고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임상시험에 응한 대상자 수만큼 연구비가 추가 지급되는 점을 악용해 질병이 발생하지 않은 환자를 임상시험 대상에 올리는 방식으로 임상시험 대상자 수를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K대 의료원 측은 "사건이 불거진 후 사내 감사팀이 자체조사에 들어갔으며 현재까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밝혔다. K대 의료원 측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자체감사를 진행하고 있고,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K대 의료원 A병원은 2013년 4월 복지부로부터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됐다. 이 병원은 3년간의 지정 기간을 거쳐 2016년 4월 재지정됐다. ▲백신(감염·면역) ▲의료기기 진단(감염·면역·암·심혈관) ▲환자 맞춤형 치료(근골격·암·심혈관) 등이 중점 연구분야였다.

    8개 연구중심병원에 1000억원 지원

    연구중심병원은 복지부가 국내 병원의 연구개발(R&D)과 보건의료기술 향상을 목적으로 연구역량이 뛰어난 병원을 지정해 예산 등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다.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되면 대외 홍보효과는 물론 국비로 예산이 지원되는 '연구중심병원 R&D 지원과제' 공모에 지원할 자격이 주어진다. 연구중심병원의 연구과제가 채택되면 9년 간 평가를 거쳐 지원금을 받게 된다. 올해까지 연구중심병원 10곳 가운데 8곳이 총 11개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지원된 예산 규모는 무려 1023억원에 이른다. 국내 유명 종합병원들이 연구중심병원에 지정되기 위해 '목'을 매는 이유다.

    '센터장의 연구비 횡령' 사건이 발생한 K대의료원 A병원 의료기기중개임상시험지원센터 역시 2015년 11월부터 5년간 정부로부터 49억원의 국비 지원금을 받았다. 이 센터는 자금이 부족한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하고 관련 세미나 등을 통해 사업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았다.
  • ▲ 보건복지부. ⓒ뉴시스
    ▲ 보건복지부. ⓒ뉴시스
    황당한 복지부 "K대의료원 자체조사 보고 판단하겠다"

    문제는 '연구비 횡령'이라는 범죄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연구중심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복지부가 특별감사나 고발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하며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연구중심병원의 지정 및 사후관리는 보건의료기술 진흥법 제15조에 따라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한다. 또 복지부는 지정 기준에 따라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의무를 갖고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번 '연구비 횡령 사건'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황당한' 답변이다. "연구비 횡령의 문제가 발생한 K대의료원 A병원의 자체조사 결과에 따라 지정 취소 등의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지에 답한 것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K대의료원 A병원 의료기기임상중개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비로 지급되는 연구비 집행은 중단됐지만, 의혹이 제기된 A교수는 대기발령 중으로 현재까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제재를 받을 수 있지만 연구중심병원의 지정 취소사유가 되느냐는 확인해봐야 한다"며 "연구중심병원 지정 취소는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법률적 해석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까지 적용이 가능한지는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부, '부정' 드러났는데도 병원 처벌 '미적미적'

    일각에서는 국비가 들어가는 보건의료 부문의 연구비 횡령 사건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이 같은 복지부의 '느슨한' 행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감독체계 자체가 부실한 데다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 2014년 서울의 다른 대형병원에서도 '도시기반 코호트 연구용역' 국책 연구사업을 수행하면서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을 연구원으로 등록해 연구비를 착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를 '개인의 일탈'로 판단, 해당 병원에는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복지부는 연구중심병원 선정과정에서 부정이  드러난 가천대학교 길병원에 대한 처분도 미루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장급 공무원 허모씨는 2013년 길병원 측으로부터 3억5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연구중심병원 선정과 관련한 정보를 흘린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아직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고 개인의 일탈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상황을 더 지켜봐야한다"며 "재지정을 할 때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병원에 대해 평가에 반영해야하는지는 고민을 해봐야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2013년 수사결과가 나온 사안에 대해, 5년이 지난 2018년 현재까지도 계속 고민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