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敵將 사라지자, 가장 강한 文으로 결집할 이유도 사라져
  • ▲ 지난달 26일과 1일, 매일경제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 결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에 실시된 1일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설 연휴 전보다 6%p 이상 급락했다. ⓒ뉴데일리 DB
    ▲ 지난달 26일과 1일, 매일경제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 결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에 실시된 1일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설 연휴 전보다 6%p 이상 급락했다. ⓒ뉴데일리 DB

    범여권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엉뚱하게도 야권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유력했던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정권교체가 기정사실이 되자, 야권 내부에서 구도보다 인물을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기문 전 총장이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직후, 매일경제·MBN의 긴급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지지율이 11.1%로 급등했다.

    안희정 지사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같은 기관에 의해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6.4%에 머물렀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제치고 단숨에 전체 3위, 야권 주자 중에서는 2위로 부상한 것이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하락세다. 문재인 전 대표는 1일 긴급 조사에서 26.1%를 기록했다. 반기문 전 총장마저 추격 대열에서 이탈한 지금,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지지세는 떨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26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32.8%를 기록했었다. 불과 엿새 만에 지지율이 6%p 이상 빠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반기문 전 총장이 강판된 이후, 범여권에는 이렇다할 위협적인 대권주자가 사라졌다. 1일 매일경제·MBN~리얼미터 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뒤를 쫓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12.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는 '더블스코어'를 넘는 격차다.

    문제는 장래 지지율의 확장성이다. 문재인 전 대표도 확장성의 한계가 있는 후보로 줄곧 지목돼 왔지만, 황교안 대행은 확장성 측면에서는 한 술 더 뜬다는 평가를 정치권 안팎에서 받고 있다. 여러 가지 한계를 고려하면, 대선이 양자 구도로 압축되더라도 당선에 필요한 51%의 지지율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후보로 평가된다.

    반기문 전 총장을 지지하던 지지세가 어느 한 대권주자에게 오롯이 쏠리기라도 했으면 그 주자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을지도 모르겠으되, 그렇지도 않다.

    안희정 지사가 4.7%p 상승한 것을 필두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1.9%p,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1.4%p, 바른정당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1.1%p 각각 상승했다.

  • ▲ 2일자 중앙일보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를 전제로 그 지지자들에게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물은 결과, 지지세는 여러 후보들에게 고르게 분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데일리 DB
    ▲ 2일자 중앙일보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를 전제로 그 지지자들에게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물은 결과, 지지세는 여러 후보들에게 고르게 분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데일리 DB

    반기문 전 총장을 지지하는 지지세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져버린 셈이다. 이는 역시 같은날,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에 불출마할 경우, 어느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를 질문한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살피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34.3%)의 뒤를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던 반기문 전 총장의 지지율 15.7%는 반 전 총장이 불출마할 경우, 여러 대권주자에게로 고루 분산돼버린다.

    황교안 대행이 비교적 큰 수혜를 보기는 하지만 유승민 의원의 수혜 폭도 상당하고, 안철수 대표와 안희정 지사·남경필 지사도 제각기 일부 지지세를 챙겨간다. 심지어 적장(敵將)이었던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이동하는 지지세도 있다. 상당수가 '지지 후보 없음'으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간 반기문 전 총장이라는, 이미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으며 향후 확장성에 있어서도 장래가 밝다고 평가받던 후보가 있던 시절에는 야권 지지자들도 좋든 싫든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결집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기문 전 총장이 중도하차했다. 그 지지세마저 사방으로 흩어져 이제 위협적인 범여권 대권주자는 없다. 정권교체는 어느새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야권 지지자들이 '가장 강력한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굳이 결집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상대가 반기문 전 총장이 아니라 황교안 대행이라고 하면, 문재인 전 대표가 아니라 안희정 지사나 이재명 시장이 나가도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라는 데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눈여겨보지 못했던 야권 대권주자들의 '인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대선의 구도가 범여권 지지자와 야권 지지자가 각각 반기문 전 총장과 문재인 전 대표로 결집하던 구도에서 벗어나 '인물론'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하차했는데,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 하락은 이렇게 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사실 야권의 대권주자들을 인물로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표가 인물에서는 가장 떨어지는 게 사실 아니냐"며 "반기문 총장이 하차하면서, 안희정 지사의 상승세가 눈에 띄고 되레 문재인 대표는 주춤거리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1일 매일경제·MBN~리얼미터 긴급 여론조사나, 같은날 중앙일보 여론조사와 관련해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