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자 동원 자체는 정치현실상 필요악… 지지 후보 연설 끝났다고 집단 퇴장은 해당 행위
  •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자로 출마한 조원진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자로 출마한 조원진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전당대회라는 건 말이죠, 당원들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서 사자후도 토하고 해야 열기가 사는 것이거든요. 평면 구조는 열기가 살지 않습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던 권성동 의원이 지난 6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당한 말이다. 모름지기 전당대회라고 하면 장내를 꽉 채운 군중들, 부글부글 끓는 열기, 만원 청중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는 후보자, 그러한 후보자의 연설에 화답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후보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지지자들… 이 모든 요소가 갖춰져야 이른바 '맛'이 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당내 일각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지지자 동원은 필요악(必要惡)이다. 관광버스로 지지자를 실어나르는 '조직 동원'은 구태 정치의 전형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의 분위기를 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에 고작 수백 명 정도가 모여 - 사실 지지자 동원이 전혀 없다고 하면 수백 명이나마 모일까 의문이긴 하지만 - 후보자 이름도 잘 모르고, 환호성도 없이 드문드문 박수 소리만 나지막히 난다고 하면, 위기의 당을 구하겠다고 떨쳐나선 후보자들부터가 김이 샐 일이다.

  •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자로 출마한 강석호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자로 출마한 강석호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장외에 천막도 치지 말고, 부채와 생수도 나눠주지 말고, 피켓도 준비하지 말고, 꽹과리와 북도 치지 말고, 깃발이나 펼침막도 휘날리지 말고, 도열해서 인사하지도 말고… '금지'의 향연인데 실제로는 다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다 금지할 양이면 사람들을 왜 체육관으로 불러모으나 싶다.

    그러니 합동연설회가 벌어지는 체육관 입구에서는 부질없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연설회 시작 시간이 한참 남아 단속이 좀 엄격하게 진행될 때에는 입구 주변에 버리고 들어간 부채가 산(山)을 이뤘다가, 시작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대기열이 줄어들지 않아 당원들이 불만이 고조될 판이면 마구 통과시킨다. 결국 피켓이며 무엇이며 금지한 물품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반입된다.

    입구에서는 부채며 생수 따위를 단속하고 있는데 바로 눈앞의 비표확인처 주변으로 무수히 설치된 각 후보자들의 천막에서는 이러한 '금지 물품'을 무제한으로 살포하고 있다. 엄연히 금지돼 있다는 꽹과리와 북 소리가 울려퍼지고 풍물패가 흥을 돋운다. 눈앞에서 뻔히 벌어지는 광경은 '노 터치'고 새삼 입구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 단속이 실효성이 있을 리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너도 하고 나도 하고 후보자라면 한 명도 남김없이 우리 모두 하고 있다보니, 누가 누구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우습다. "후보자들 간의 불만이나 지적이 접수된 것이 없다"는 당 선관위 관계자의 말도 당연하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을 토하고 지적을 한단 말인가.

    이렇게 후보자도 안 지키고 선관위도 손을 놓아 규정 자체가 사문화될 판이면, 합동연설회를 시작할 때 딱히 '조직 동원'을 문제삼는 것은 이제 그만 두는 것이 옳다. 너무나 기만적인 행태이고, 정치현실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자로 출마한 주호영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자로 출마한 주호영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오히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합동연설회 도중, 그리고 합동연설회가 끝나갈 때 무렵이다. 말하자면, 입구(入口)가 아닌 출구(出口)에서 '조직 동원'이 촉발하는 폐해를 단속하라는 말이다.

    합동연설회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듯 했던 '지지자 동원'은 연설회가 끝날 때쯤 되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지지하는 후보자의 연설이 끝나면 썰물 빠지듯 자리를 비운다. 이를 고려했기 때문인지 연설회 순서가 최고위원~청년최고위원~당대표 후보자의 순으로 돼 있지만, 폐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3일 전북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서 그 폐해가 여실히 나타났다.

    당대표 후보 세 번째 연설 순서인 이주영 의원이 연단에 오를 즈음에 무대에서 볼 때 우측에 위치했던 이정현 의원과 정병국 의원의 지지자들이 앉아 있던 좌석은 본래 체육관 좌석 색깔을 비로소 알 수 있을 정도로 절반 가까이 빈 자리가 드러났다. 이 두 후보자가 이미 연설을 마쳤기 때문이리라.

    네 번째 연설 순서인 한선교 의원이 정견 발표를 시작하려 할 때에는, 이정현 의원과 정병국 의원의 지지자들은 거의 전부가 이미 이석했다. 무대에서 볼 때 좌측에 있던 이주영 의원의 지지자들도 지지 후보가 방금 연설을 끝마쳤기 때문인지 통로를 따라 일렬로 질서도 정연하게 빠져나가는 게 눈에 띄었다.

  •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자로 출마한 이주영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자로 출마한 이주영 의원의 지지자들의 모습.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최고위원 후보자 중에서는 이은재 의원, 최연혜 의원, 이부형 청년최고위원 후보자의 지지자들이 이 무렵 완전히 자리를 떠서, 한때 지지자들이 앉아 있었다는 뜻으로 펼침막만 앞에 외로이 걸려 있었다.

    후보자들이 '당원 동지 여러분'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은 말 뿐인가. '당원 동지'들끼리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연설을 끝냈다고 나가버리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혹시 지지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다른 후보자의 정견 발표까지 듣고 있다보면 이탈을 하거나 '반란표'라도 행사할까봐 두려운지, 집단 이석을 하는 지지자들의 후보는 그렇게도 경쟁력이 없고 그다지도 자신이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선관위며 클린선거 소위원회가 단속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행태가 아닌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일렬로 퇴장해 관광버스를 타고 체육관을 떠나는 모습을 왜 방치하는가. 이야말로 합동연설회의 열기를 빼놓는 해당(害黨) 행위다.

    어느 정도의 지지자 동원은 오프라인 합동연설회의 필요악으로 보고, 입구에서 벌이는 부질없는 실랑이는 이제 그만 두라. 대신 출구를 주시해야 한다. 지지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집단 퇴장하는 행위는, '연설 방해'가 다른 형태로 표출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원과 국민들도 어느 후보자가 동원한 지지자들이 이와 같은 비매너 행태를 보이는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