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손가락 잘라 조국독립맹세… 日 '이토 히로부미'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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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순교도소에 투옥됐을 당시 안중근 의사. 당시 신분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다. ⓒ뉴데일리 DB
    ▲ 여순교도소에 투옥됐을 당시 안중근 의사. 당시 신분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다. ⓒ뉴데일리 DB


    독립의지를 다지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단지동맹'을 결성, 적 수괴를 사살한 뒤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스러졌던 안중근 장군,

    이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이 오는 26일 오전 10시 서울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는 25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붙잡혀 순국한 안중근 장군을 기리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식'을 국내·외에서 다채롭게 연다고 밝혔다.

    추모식은 '안중근 의사 숭모회' 주최로 국가보훈처 차장, 안중근 의사 유족, 안중근 의사 숭모회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추모식은 안 장군의 최후 유언 낭독, 참석 내빈 추모사, 안중근 의사 순국 106주기 전국 학생 글짓기대회 수상자 시상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같은 날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안중근 장군의 유묵을 활용해 교내에 건립한 안중근 의사 유묵비 제막식이 열린다.

    안 장군이 순국한 중국 대련의 舊여순 형무소에서도 26일(현지시각) 안중근 의사 기념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안중근 장군은 1879년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중국 상해에서 국권회복운동을 진행했다. 부친상을 당하고 귀국한 안 의사는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후학 양성에 양성에 힘썼다.

    1909년 봄, 안 장군은 김기룡, 조응순, 황병길 등 애국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기도 했다.

    안 장군은 그해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덕순 등과 거사를 계획한 후 26일 실행에 옮긴다. 안중근 장군은 총알 3발을 정확히 이토 히로부미에 명중시켜 사살했다.

    안중근 장군은 현장에서 일제 헌병에게 피체된 뒤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돼 심문과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초지일관 한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다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