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단의 순간-대통령이 나서고 국민이 각성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1970년대의 남북 적시자회담 이래
    우리 역대 정부가 추구해 온 40년~45년간의 대북 평화공존, 교류협력 노력이
    결과적으론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직시한 것이다.
    그런 선의(善意)의 노력을 시작한 당초의 충정 자체는 순수한 것이었지만,
    오늘의 결과의 측면에서 볼 때는 그 노력이 별 성과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용기란 무엇인가?


  • 우리 자신의 결함을 호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용기다.
    이점에서, 듣는 사람들로선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이 담은
    진정성을 전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 우리는 왜 적중하지 못했는가?
    어느 대목에서부터 우리의 대북 평화공존, 교류협력, 통일추구가
    ‘북에는 유리하고 우리에겐 불리한’ 게임이 되기 시작했는가?
    북한과 교섭하는 데 있어 ‘상호주의를 포기하기 시작한 것’이
    실책의 가장 결정적인 발단이었다고 필자는 바라본다.

      그 전에도 남북회담, 정상회담, 적십자회담 같은 행사를
    자기 정파(政派)의 정치적 입지 향상을 위한 쇼로 활용하는 등,
    대북정책의 일탈적 양상이 드러난 적이 곧잘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북 정책이 본격적으로 ‘북에는 이롭고 우리에겐 불리한’ 짓으로
    역기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햇볕정책’을 계기로 해서였다.

      ‘햇볕 전도사’들은 선공후득(先供後得,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일방적, 무조건적 현금지원을 자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은 그 동안 북한에 흘러간 우리의 공여자금 액수는
    무려 30~35억 달러였다고 했다.
    우리는 그러나 그렇게 하고서도 아무런 후득(後得)을 한 바가 없다.
    비전향 장기수(북한의 간첩과 공작원)를 돌려보냈는데도
    국군포로는 단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 이게 후득인가?

     '햇볕 논리‘나 ’햇볕 짓‘에선 그러나 일부 ’좌파적‘ 개인이나 운동단체나 정권만이 한 게 아니라, 크게 봐선 보수라 해야 할 개인, 단체, 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부 대기업은 “북한 사람들에게 ’돈맛‘을 들여주면 북한이 변해서
    공존, 교류, 협력, 시장화, 평화통일로 나올 것”이란 소리를,
    마치 신상품 개발이나 한 듯 세일즈 하고 다녔다.
    일부 대(大)부르주아들의 그런 “돈이면 염라대왕도 매수할 수 있다”는 식의
    ’경제 환원(還元)주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딘가 버스 놓친 루저 취급을 받다 시피 했다.

      비단 대(大)상인들만이 아니었다.
    딱히 좌파가 아니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소(小)부루주아 학자, 언론인,
    고소득 화이트칼라들 역시 “북한이 무슨 수로 전쟁하나...”
    “우리 경제가 북의 몇 십 배니까...“ "돈맛으로 북한을 녹일 수 있다“
    ”같은 민족끼리 무조건 주고 양보해야...“ ”김정일 비판은 냉전적...“ 하는 논리를 내걸고,
    심지어는 막대한 뒷돈을 줘가면서까지 평양에 가서
    김정일 알현(謁見)을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일부 논자들은 요즘도 ”북한이 핵 동결(凍結)을 하는 조건으로
    미-북 평화협정을 논의하자“는 소리들을 하고 있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천안함-연평도-목함지뢰 도발, 김정은의 공포정치,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는 북한의 호전적 자세는 우리 내부의 그런 ‘좌파 햇볕’과
    ‘강남 햇볕‘에 대한 통렬한 배신이자 따귀였다.
    그러나 ’좌파 햇볕‘도 ’강남 햇볕‘도 이게 배신’이요 ‘따귀’라는 걸
    모른다는 데 더 큰 아이러니가 있다.
    그들은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가 마치 남북관계를 냉각시킨 최초의 원인인 양
    몰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 폐쇄를 결단하기 이전에 있었던 북한의 이중성, 각종 도발, 거짓, 꼼수에 대해선 일체 함구한 채... 개성공단에서 북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달러의 70%가 당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이제 그런 수 십 년 동안의 위선을
    더 이상 방치하거나, 되풀이하거나, 그것에 당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
    북한의 변화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비장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볼 때, 평양의 '세습 천황제 파시즘'과 그 엽기적인 '신정(神政) 체제'를
    지양(止揚)함이 없이는 한반도의 평화구조 구축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의 교훈이 일깨워준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서는 것을
    기피해선 안 된다. 아니, 기피할 수 없다.

      어떤 논자들은 이 추세를  ‘신(新)냉전’이라고 딱지 붙인다.
    평화를 버리고 대결로 간 ‘전쟁 불사(不辭)론’인 것처럼 몰아가는 비딱한 시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취지는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평화공존, 교류협력,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북한은 그 선의에 찬물을 끼얹고 핵-미사일로 임했다.
    이걸 그대로 방임하면 나중에 우리가 꼼짝 못하고 당하게 생겼다. 그래서 참다 참다 못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데 있다. 진실로 참다 참다 못해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이 국민 몫을 해야 할 차례다.
    국민 몫은 무엇인가? 각성하는 것이다.
    목함지뢰 도발 때 전역일자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애국병사들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국민은 지금 각성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결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하는 여론을 단연 제치고 있다. 정세는 대한민국 진영의 우세로 들어섰다.
    좌(左) 풍조가 ‘그들의 한 철’이었다면
    이제는 자유민주-자유지성 세(勢)가 다시 바닥을 치고 일어서는 반격의 계절이다.
    이 기세로 2016년을 장식하자.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