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野圈 헷갈림, 정확하게 꿰뚫어 봐야

      야권(野圈)을 통틀어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누가, 어느 계열이 과연 야권(野圈)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는가?
    이게 헷갈린다는 것이다. 착시(錯視) 현상이다.
    왜 이렇게 됐나?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 세대엔
    이승만 박사 직계(直系)와 한민당-민국당 계열, 두 흐름이 있었다.
    이승만 박사 직계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서 자유당으로 진화했다.
    한민당-민국당은 민주당으로 통합되었다.

      민주당에는 조병옥 박사의 구파(舊派)와 장면 박사의 신파(新派)가 있었다.
    구파는 보다 더 보수적인 의회민주주의자들이었고
    신파는 한결 자유주의적인 의회민주주의자들이었다.
    양자 사이엔 만만찮은 권력투쟁과 노선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열성적인 '친(親)대한민국-반(反)김일성 집단'이라는 점에선 전혀 차이가 없었다.

     1960년대에 민주당은 박정희 정권에 대해 치열한 '반(反)독재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이 때의 민주당에는 구파 출신 김영삼 계열과 신파 출신 김대중 계열이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이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은 그 전에 이미 노태우, 김종필과 함께 민주자유당을 만들었다.
    이 때 이 '3당 합당'에 가담하지 않은 계열은
    김대중을 따라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으로 진화했다.

  •  이 과정에서 김대중은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포위작전을
    돌파하기 위해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을 본격적으로 껴안았다.
    당시의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에는 체제변혁 학생운동-민중운동이
    이미 착실하게 침식해 있었다.
    이들은 김대중 민주당이 김영삼 민자당보다는
    한결 '진보적'이라고 간주해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 김대중 역시 386 학생운동을 '새 피 수혈' 명분으로 끌어안았다.
    386 운동권은 그 후 김대중 민주당의 주요 계파로 성장해
    금배지를 달았다.

      노무현이 집권하자마자 그러나 이들 386들은
    김대중 민주당의 '박힌 돌'인 동교동계를 밀어내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이때부터 한국 야권은 386 체제변혁 세력에게 먹혀버렸다.
    요즘 말하는 '친노(親盧) 패권주의'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대한민국 야당이 '충성스러운 반대당(loyal opposition)'에서
    '체제 변혁적 야당 (disloyal opposition)'으로 바뀐 계기였다.

     이들은 말이 '전통야당'이지 실제로는 '한민당-민국당-조병옥 민주당-장면 민주당'과는
    이념적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니 오히려 그 전통을 전면 배척하는 이질(異質) 분자였다. 이게 오늘의 더불어 민주당의 실세, 친노-친문(親文) 계열의 내력이요, 정체요, 족보(族譜)다.

     국민의 당 선발대(안철수, 유성엽, 황주홍, 박주선 등)는 바로 이 친노-친문 패권주의가 싫어서 분가(分家)해 나간 '분노한 호남 민심'이었다. 이 분노엔 상당한 보편적 정당성이 있었다.
    호남 바깥의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까지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 있는 정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판국에 급박한 문제가 발생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박근혜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하고,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가결시키고,
    한-미 동맹군의 대대적인 연합훈련이 개시되는 등,
    국내외 안보환경이 '당근 시대'에서 '채찍 시대'로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바뀐 것이다.

      이 급변한 정세하에선 '운동권 프레임'을 '낡은 진보'라고 배척한 안철수라면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유엔 안보리-한-미 동맹의 '이빨 있는 대북 제재'를
    '전폭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비판적 지지' 또는 '조건부 지지' 정도는 했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한 말(안보는 보수)의 앞뒤가 맞는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안철수의 '제3의 길'은 맛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제3의 길'은 우(右) 클릭이 아니라 좌(左) 클릭이었던 것이다.
    안철수 노선은 결국 "죽도 아닌 것이, 밥도 아닌 것..."으로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그러나 이것으로도 끝나는 게 아니었다는 데 있다.
    문재인이 '바지 사장'으로 앞세운 김종인이 어럽쇼 이게 웬일,
    안철수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개성공단 전면중단은 단순한 찬반(贊反)으로 대할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궤멸할 것이다" "햇볕정책도 시대가 달라졌으니 고쳐야 한다"라며
    의외의 역발상(逆發想)과 역주행(逆走行)을 한 게 아닌가?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종인은 "야권통합 하자"며 툭 한 마디 던졌다.
    이것 하나로 국민의 당은 순식간에 모래알로 돌아갔다.
    김종인의 방법론적(methodological) '신(神)의 한 수'였다.
    야당의 적통은 누구이고,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이냐의
    오늘의 그쪽 동네의 헷갈림은 이렇게 해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결론을 내리자.

    '친노-친문 패권주의'를 차버리고 나간 안철수의 분당 행위는
    대한민국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는 한결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제재에 반대함으로써
    자신의 '분당 명분'을 스스로 완벽하게 죽여 버렸다.
    대의(大義)와 리더십의 두 측면에서 그는 '완전 우습게' 돼버린 모양새다.
    중도 보수 유권자도 그를 떠났다. 대권주자로서도 그는 4위로 밀려났다.
    안철수의 한계랄까.

     그러면 김한길 천정배는 어떤가?
    이들은 불과 한 달도 채 될까 말까 하는 사이에 친노-친문 계열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뜨겁게 토론한 끝에' 갈라섰다가,
    요즘엔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표정을 싹 바꾸어
    '야권 통합' 또는 '선거 연대'를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김한길 천정배에 대해서도 온 동네가 들썩하고
    그들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철저히 한 번 가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세상에 그럴 수가? 차버린 마누라가 나중에 다시 보니 아차 싶던가?


     그렇다면 김종인은 과연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필자는 소시(少時) 적부터 그를 멀리서 관찰해 온 사람이다.
    애정도, 우정도, 친분도 전혀 없이, 그냥 옛날 옛 적에 김병로 대법원장의 손자라고 하기에
    한두 번 조우한 게 그와 필자 사이에 있었던 이 세상 인연의 전부다.
    결론적 인상이라면? 비(非)호감'이었다.

     이 썩 즐겁지 않은 인상을 뒷받침 한 게 그의 한 세상 사는 방법이었다.
    대체 무슨 재주 있기에 그는 전두환-노태우에 그치지 않고 그 후로도 줄곧 여당-야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비례대표 4선을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험난한 현대사의 고비 고비를 거쳐 오면서 남들은 이만큼 모진 목숨 부지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는 어찌해서 단 한 번의도 차질도 없이 저리도 끈질기게 역대정권에서 예외 없이 발탁되곤 했나? 심지어는 박근혜 선거운동 때까지도 말이다. 도대체 그 비결이 뭔가?
    이게 과연 말 되는 소리인가?

     그런 그가 지금 정계와 미디어의 최고 뉴스 메이커로 각광받고 있다.
    이건 그러나 신기루이고, 신기루로 끝나야 할, 순(純) 착시 현상이다.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 그가 술수(術數)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의 단수(段數)는 그래서 최소한 김무성보다는 위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 그리고 정통성 족보상 그는 세상이 두 쪽 난대도 야당의 적통은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야당의 적통은 역시 일관성에서 나와야 한다.
    김종인이 여-야를 넘나들든 말든 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런 갈지자 걸음의 당사자가 야당의 총수가 된다는 건
    하늘의 법도가 있는 한에는 말이 안 된다.
    왜냐고? 그냥 그렇게 느낀다, 어쩔래?

     이런 그를 두고 보수 담론 계(界) 일각마저 '김종인 대통령' 운운한다니,
    선거판이 오니까 세상이 마구 미쳐 돌아가고 있다.
    본질이 아무리 부적격일지라도 시정(市井)의 뉴스 메이커만 되면
    아무에게나 '대통령' 운운을 붙여줘도 괜찮은가?
    한국 보수 담론계의 도덕적 판단력이 이 지경까지 추락했다는 뜻이라면
    그건 정말 "맙소사!!"다.

      '결론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 그만 눈 씻고 깨어납시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의 겉과 속을 분명하게 바라봅시다" .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