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연출 "20년 지났는데도 범인 잡지 못한 현실, 가슴 아프다"
  •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연극 '날 보러와요'가 초연 20주년을 맞았다. 

    '날 보러와요'는 극작가 김광림 작·연출로 1996년 2월 극단 연우무대에 의해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렸으며, 20년 동안 15차례에 걸쳐 관객들과 만났다.

    초연부터 10년간 연출을 맡았던 김광림은 지난 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날 보러와요' 프레스콜에서 "한마디로 정말 행복하다. 20년간 참여했던 배우들이 다시 공연을 하게 되서 행복하고 고맙다"며 2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말했다.

    또한, "20년 전 공연이 끝난 후 관객 반응이 어떨지 두려웠다. 그런데 뜨거웠던 열기로 가득했던 기억이 남는다. 공연을 하면서 컴퓨터를 뒤져 보니 버전이 10개 정도 되더라. 이번 공연이 허점없는 최종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에서 10명의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된 사건으로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2006년 4월 2일)가 끝나 결국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다.

    연극 '날 보러와요' 제목에서 '나'는 범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김광림 연출은 어딘가에 범인이 존재한다면 이 공연을 보러 오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에 지난 2006년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렸던 국립중앙박물과 극장 용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용의자석'을 만들어 공연 기간 내내 비워두기도 했다.

    김광림은 "이 작품을 위해 취재하고 현장 조사하면서 억울하게 죽었던 희생자들과 많은 피해자들을 봤다. 형사들도 피해자다. 사건 하나에 피해자가 굉장히 많다. 이러한 억울한 죽음과 희생들이 어떻게 하면 개선될까 늘 생각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이번 20주년 공연은 초연부터 10년간 '날 보러와요'에 출연했던 배우들로 구성된 OB팀과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출연한 배우들이 YB팀으로 나뉘어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특히, 남씨부인 역을 맡은 황석정은 한 장면만 짧게 등장하지만 구수한 사투리, 찰진 욕 등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다.

    OB팀은 이대연(김반장) 권해효(김형사), 김뢰하(조형사), 유연수(박형사), 이항나(박기자), 류태호(용의자), 공상아(미스김) 등이 연기한다. YB팀은 손종학(김반장), 김준원(김형사), 이원재(조형사), 김대종(박형사), 우미화(박기자), 이현철(용의자), 임소라(미스김) 등으로 꾸려졌다.

    '날 보러와요' 20주년 기념공연이 확정되자 김광림 연출은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섭외했다. 권해효는 다시 김형사 역할을 제안하는 김광림의 전화를 받고 "저 지금 쉰 둘이에요. 서른 셋 때 했던 역할을 지금 다시 하라구요?"라며 당황해했다는 후문이다.

    권해효는 "OB팀 평균 나이가 52세다. 30대 초반에 했던 역을 50대에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초반 연극할 때가 떠올랐다. 내한공연을 보면서 부러운 것이 한 무대에 선 배우들이 같이 나이 들어가 멋진 중년, 노년으로 연기를 하는 거였다. 그런 마음을 이번 무대에서 느꼈고, 관객들이 따뜻하게 봐주지 않을까 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권해효와 같은 역의 YB팀 김준원은 "처음 연극이라는 걸 잘 몰랐을 때 선배님들이 엄청 크게 보였고,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며 "이승우가 유소년에 있다가 메시, 호날두가 있는 축구장에서 같이 골 차는 느낌이다. 무대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고 감격스러워했다.

    2006년부터 이어받아 지난해까지 꾸준히 공연을 해온 YB팀 변정주 연출은 "OB팀과 억지로 다르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대본의 본질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드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YB와 OB의 리듬과 에너지가 어쩔 수 없이 달라지기 때문에 조명과 음향디자인이 두 가지다.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 '날 보러와요'는 무대 전환 없이 경찰서, 쑥다방, 취조실 등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다.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1번이 흘러나오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극은 잔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지만 살인사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조명과 음향 효과, 직설적인 대사 등을 통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이 주된 이야기지만 두 러브라인은 무거운 극의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쑥다방에서 커피를 나르는 미스김은 시인을 동경하는 순수한 아가씨로 김형사를 짝사랑하고, 경기일보 박기자는 조형사와 연인 아닌 연인 같은 묘한 관계를 이룬다. 이런 인물들 간의 관계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따뜻한 웃음 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고르기아스는 '진실을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범인을 잡자든지, 국가시스템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연출 김광림)

    연극 '날 보러와요' 20주년 기념 특별공연은 2월 2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