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퇴·비대위 구성 대신 패권주의 퇴각 절차… 밖에서 싸울 이유 없어
  •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 복귀했다. 문재인 대표의 당무 전횡에 항의하며 지난달 7일부터 최고위 참석을 거부해온지 45일 만의 복귀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복귀에 여타 당 지도부 구성원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모두발언에 앞서 "이종걸 원내대표의 최고위 복귀를 환영한다"고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지난 40여 일간 통합여행을 한다는 명분으로 최고위에 불참하다가 오늘 복귀하게 됐다"며 "그동안 힘든 여정을 걱정해주신 대표, 최고위원, 당원 동지들에게 감사 말씀과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 모두발언에서 전날 문재인 대표가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대표직 사퇴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못박았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어제(19일) 문재인 대표가 선대위로의 전권 이양을 포함한 말씀으로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위한 큰 결단을 했다"며 "만시지탄이지만 국민의 마음 속에 국민과 더불어 국민의 깃발이 휘날릴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의 사퇴가 총선 승리를 위한 전기(轉機)가 된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문재인 대표가 그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어서는 절대로 총선을 승리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또, 대표 사퇴의 결단조차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너무 늦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모두발언이 이어지는 도중 자리를 떠나 대표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전병헌 최고위원의 모두발언 도중에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전날 했던 신년기자회견 내용 중에서 유독 자신의 대표 사퇴만이 "결단과 자기희생"으로 높이 평가되는 것을 면전에서 듣고 있기 불편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최고위 복귀가 당내외의 국면 전환에 따른 전략·전술적 변화라고 보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 참석을 거부하기 시작한 지난달 7일은 더민주를 둘러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때였다. 주승용 의원이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친노패권주의 정치 행태를 규탄하며 최고위원직을 던졌고, 안철수 의원 또한 혁신전당대회 소집을 요구하며 지방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국면은 분당(分黨) 정국으로 들어서 13일의 안철수 의원 탈당과 17일의 문병호·유성엽·황주홍 의원 동반 탈당, 20일의 김동철 의원 후속 탈당에 이어 이번달 3일의 김한길 의원 탈당으로 위기가 정점에 달했다.

    이러한 분당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당내외에서는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문재인 대표가 조건 없는 즉각 사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켰다. 그러는 사이 지난 14일 김승남 의원의 탈당을 마지막으로 분당 정국의 1차 국면은 완료됐고,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선대위 체제에 당권 이양을 시사하는 등 패권주의적 질서 하에서의 사퇴를 준비하고 있다.

    만일 분당 정국 속에서 문재인 대표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민심의 힘에 의해 끌려져내려오는 사태로 진전됐다면, 이종걸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권한을 갖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가 민심을 거스르며 버텼기에 이제 그런 시나리오는 현실화되기 어려워졌다. 문재인 대표는 지도부 총사퇴 대신 당무위 소집을 통한 패권주의적 '질서 있는 퇴각'을 노리고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더 이상 최고위 참석을 거부하며 밖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다시 최고위 안으로 들어와 선대위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친노패권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로 전술을 전환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야권 관계자는 "이종걸 원내대표는 과거에도 혁신위가 친노패권주의 청산위원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당내에 만연한 패권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며 "문재인 대표가 사퇴한다고 하지만 '질서 있는 퇴각' 과정에서 친노패권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여러 안전 장치가 도입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시 최고위 안으로 들어가서 싸우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