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재신임 놀음 중단하고 비례대표 축소·지역구 확대에 동의하라
  • ▲ 전남 무안·신안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이 11일 중앙선관위 관악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비례대표 의석을 과감히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려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유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전남 무안·신안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이 11일 중앙선관위 관악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비례대표 의석을 과감히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려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유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무안은 넓었다.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지역 의견 수렴 공청회 취재를 위해 출장을 갔더니, 비로소 군(郡)의 광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같은 무안군이지만, 군청이 있는 무안읍에서 공청회가 열리는 전남도의회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무안공항에서부터 가려면 2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라, 용산에서 목포까지 KTX로 가는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전남 무안의 남악신도시는 190만 전남도민의 민의를 대변하고 행정을 처리하는 도청과 도의회가 이전해 왔지만, 철도역이 없고 버스 노선도 부실했다. 호남선은 멀찍이 떨어진 일로읍에서 도의회 북쪽의 오룡산을 터널로 통과해 부질없이 임성리로 방향을 꺾었다.

    이 지역의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 함께 관장하는 신안군까지 합치면 서울특별시 면적의 22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인구 하한선 미달로 통폐합 대상 선거구가 됐다. 항공기와 철도·자가용에 신안군의 경우에는 배까지 타면서 서울과 지역구를 수백 차례 오가고 있지만, 여기서 군(郡)이 하나 더 달라붙는다면 '민의 수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같은 당 이개호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은 담양읍·함평읍·영광읍·장성읍의 4개 읍(邑)에 지역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한 명씩만 내려가 있어도 네 명이 필요하다. 비례대표는 단 한 명도 지역구에 내려가 있을 필요 없이 9명의 보좌진을 오롯이 서울에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손이 딸릴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기자협회장인 뉴시스 구길용 기자는 9일 "이개호 의원은 인력·조직·사무소 모두 네 배로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한다"며 "선거구가 너무 넓다보니 예비 정치인들도 혀를 내둘러, 지역구에 경쟁 후보가 나타나지 않는다더라"고 전했다. 농어촌 지역구의 지나친 면적 확대로 정치 신인의 등장이 봉쇄돼, 대의민주주의마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7월 30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돌연 인구 하한에 미달하게 된 선거구는 25개. 그 중에서는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와 전북 무주·진안·장수·임실처럼 이미 4개 군(郡)이 결합해 있는데도 또 인구가 미달하게 된 곳도 있다.

    이 때문에 의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지만, 희한하게도 모인 의원들은 하나같이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다. 서울이나 부산·광주 등 대도시에도 인구 미달로 통폐합되는 선거구가 있는데 이들은 대책 마련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농어촌 의원들만 '농촌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무릅쓴 채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11일 중앙선관위 관악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농촌에서 태어난 게 죄라는 생각이 든다며, 획정위에서 이 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11일 중앙선관위 관악청사에서 열린 선거구획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농촌에서 태어난 게 죄라는 생각이 든다며, 획정위에서 이 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번에 인구 미달로 통폐합 대상이 된 한 광역시의 자치구 지역구 의원실 관계자는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웃한 ○구(區)나 ○구로 통합되더라도 그러면 인구가 다시 상한을 넘치게 되니, 결국 부산 북·강서 갑을이나 해운대·기장 갑을처럼 합쳤다가 다시 분구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장윤석 의원은 11일 선거구획정위가 농어촌 지역 국회의원의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어느 날 저녁,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농촌에 있는 게 참 억울하더라"며 "도시 지역에도 인구 하한에 미달하는 선거구가 6개가 있는데, 인구 하한이 14만 명이 됐다고 해도 아무도 걱정을 안 하더라"고 토로했다.

    장윤석 의원은 "하한 미달인 선거구는 어딘가에 통합돼야 하는데, 도시는 인구가 많은 곳이다보니 통합하면 분구를 안 할 수가 없고 다시 하나가 생겨난다"며 "반면 농촌은 옆에 붙여도 상한을 넘길 방법이 없으니 (선거구가) 그냥 죽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같이 하한 미달됐는데 도시 지역 의원들은 걱정도 안 하는 것을 보니 '농촌에서 나서 농촌 지역 의원을 하고 있는 게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한을 획정위에서 풀어주셔야겠다"고 하소연했다.

    장윤석 의원의 하소연에 선거구획정위 회의실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이 절절한 한(恨)을 공유하고 있는 박민수·이윤석·황영철 의원 등의 웃음은 쓴웃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계 일각에서는 농어촌 의원들이 모여 농어촌 지역구 지키기 운동을 하는 것을 놓고 '농어촌 의원들의 제 밥그릇 지키기'라고 폄하한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있던 기해가 은퇴를 청하자, 진도공(晉悼公)이 후임자를 천거해달라고 했다. 기해가 해호(解狐)를 추천하자, 도공은 깜짝 놀라 "그대와 원수가 아닌가"라고 물으니, 기해는 "후임에 적합한 사람을 하문하셨지, 신(臣)과 원수인지를 묻지 않으셨다"고 답했다.

    이에 감탄한 도공이 해호를 임명하려고 할 때 마침 해호가 먼저 타계했으므로, 도공은 다시 기해를 불러 후임자를 물었다. 이에 기해가 "기오(祁午)가 좋겠다"고 하니, 도공이 더욱 놀라 "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어떻게 아들을 추천할 수가 있느냐"고 힐문했다.

  • ▲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함께 각 지방에서도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석 수를 늘려 지역대표성을 지키는 게 맞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국민들은 관심도 없는 재신임 놀음에 빠져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를 외면하고 비례대표 의원 정수 유지를 고집해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함께 각 지방에서도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석 수를 늘려 지역대표성을 지키는 게 맞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국민들은 관심도 없는 재신임 놀음에 빠져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이를 외면하고 비례대표 의원 정수 유지를 고집해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하지만 기해는 "그 벼슬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물으셨을 뿐, 신의 아들인지를 묻지 않으셨다"며 "비록 아들이지만 그 자리에 적합하기에 추천할 것일 뿐, 사사로운 정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지금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대표성 지키기에 나선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나선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국익(國益)과 관련된 문제다. 더 이상 농촌 지역대표성이 희생되고 지역구 면적이 확대돼도 대의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걸려 있다.

    5000만 국민 그 누구도 자신을 대변하는 대의대표라고 여기지 않는 비례대표 의석을 헌법교과서 속에서나 나오는 이론 때문에 반드시 신성시하면서 유지해야 할 것인지, 그 때문에 지역민들의 목소리는 희생돼도 좋을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해가 자신의 아들을 추천한 것이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정신인 것처럼, 농어촌 의원들의 목소리를 '자기 지역구 지키기'로 곡해해서 들을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국민의 목소리로 여겨 경청할 필요가 있다. '농촌에서 난 게 죄'라고 느낄 정도로 한(恨)을 갖게 된 것이 비단 농어촌 지역 의원들 뿐인지, 아니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이 공유하는 정서일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이날 장윤석 의원의 하소연을 현장에서 들은 선거구획정위원들 뿐만 아니라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도 2000만 지역민의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이미 비례대표를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려, 농촌 지역대표성을 최대한 지키는 방법에 동의했다. 새정치연합에서도 강창일 제주도당위원장·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이 공동 발표문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표만 '유일한 반대 세력'이 돼서, 정치권의 대승적 합의를 가로막는 어깃장을 놓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의 이러한 어깃장 때문에 선거구획정위에서 과감하게 비례대표를 줄여 민의와 여론에 부합하는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해를 받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민심의 뜻에 역주행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관련도 없는 학자들까지 물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표는 국민들은 관심도 없는 '재신임 놀음'을 즉각 중단하고, 지역대표성을 지켜낼 수 있도록 '비례대표 축소, 지역구 의석 확대'에 동의해 선거구획정위원들의 짐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