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 수용 안 되면 오픈프라이머리도 채택 안 될 전망
  • ▲ 6일 선거제도에 관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6일 선거제도에 관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전국적 개혁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긴급 토론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혁 관련 논의에 가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일괄 타결을 제안하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정개특위에서 논의하자며 완곡히 거절하는 등 선거제도 관련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내년 총선의 일주체(一主體)로서 여야 양당이 선거제도 논의를 주도하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천정배 의원은 6일 오후 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불평등한 선거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조성복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이 발제를 맡고, 최태욱 한림대 교수와 정상호 서원대 교수가 토론을 진행했다.

    천정배 의원은 "거대 양당이 독과점을 누리고 있는 정치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면 민의가 정확히 반영되는 수준 높은 선거 제도를 가지는 게 우선"이라며 "최근 국회의원 선거 제도에 관한 여야의 논의는 길을 잃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새누리당은 현재의 제도에서 가장 기득권을 누릴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선거제도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며 "이것은 노골적이다 못해 반동적"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새정치연합도 나름 90점짜리는 된다고 보여지는 선관위 안이 제출됐음에도 몇 달 동안 어떠한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혁신위의 주장은 의원 정수 증원 가능성과 결부되면서 다른 바람직한 논의는 실종되고 국민 여론의 벽에 부딪쳤다"고 지적했다.

    이날 긴급토론회 참석자들은 대체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거부하는 새누리당과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한 새정치연합 여야 양당을 싸잡아 비판하며, 중앙선관위 안대로 현재의 300석 의원 정수 유지를 전제로 지역구 200석·비례대표 100석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게 차선책(次善策)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천정배 의원이 '100점은 안 되지만 그래도 90점은 되는 의견'이라고 칭찬한, 올해 2월 24일 발표된 중앙선관위 안(案)의 관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하다는 데 있다.

    중선관위 안에 따르자면, 지역구를 현행 246석에서 46석을 줄여 200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7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을 2대1까지 줄이도록 결정했다. 이 때문에 지역구가 늘어나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지역구를 줄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헌정사를 살펴봐도 국회의 지역구 의석이 줄어든 것은 1963년의 6대 국회와 1981년의 11대 국회 뿐이다. 이 때는 국회가 아닌, 국가재건최고회의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조정했기에 가능했다. 정상적인 헌정 과정에서 국회의원 지역구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개특위에 관여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헌재 결정 때문에 지역구가 최소한 250~260석까지 늘어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역구를 200석으로 줄인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받을 수도 없고, 우리 당이 제안할 수도 없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천정배 의원은 아직 홀몸(?)이라 기세 좋게 지역구를 200석까지 줄이자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천정배 의원 입장에서는 여야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공격하기에 좋은 소재이니 계속 중선관위 안을 들고 흔들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내다봤다.

     

  • ▲ 중앙선관위가 올해 2월 24일 제시한,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따른 각 권역별 의석 수. ⓒ연합뉴스 사진DB
    ▲ 중앙선관위가 올해 2월 24일 제시한,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따른 각 권역별 의석 수. ⓒ연합뉴스 사진DB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선거제도 논란은 어떤 방향으로 낙착될까.

    정치권 관계자는 "정개특위 위원들도 현역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결국은 비례대표보다 지역대표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역구 의석이 270석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른 관계자도 "지금도 4개 군(郡)이 한 국회의원 지역구를 이루고 있는 곳이 많은데, 헌재 결정에 따르면서도 지역구를 현행대로 246석으로 유지하려면 군(郡)이 더 달라붙어 6~7개 군이 한 선거구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며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입법적인 대책이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 상하한에 따라 정하도록 하되, 입법적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 사례가 두 가지 있다. 제주도와 세종시다.

    공직선거법 제21조 1항은 시·도의 지역구 국회의원 정수는 최소 3인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제주도만을 위한 규정이다. 이러한 예외 조항이 없으면 인구 57만8,000여 명인 제주도는 의석 수가 2석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조문 단서 조항에서 세종시는 1석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인구가 9만9,000여 명인 세종시에도 따로 1석이 부여됐다.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구가 부족한 농어촌 선거구가 급격히 통폐합되는 것을 막기 위해 "4개 군(郡)을 초과하여 1개의 국회의원 선거구로 묶지 못한다" 등의 조항이 신설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서 헌재 결정까지 지키자면 실제로 지역구 의석 수는 크게 늘어나게 된다.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개혁국민자문위원회는 지역구 240석·비례대표 60석의 '4대1 방안'을 잠정적으로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정치권 곳곳에서는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의 '5대1 방안' 등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 수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현행 의원 정수 300석을 유지하면서 지역구 270석·비례대표 30석으로 양자의 비율을 9대1로 하는 방안으로 귀결되는 게 유력해 보인다.

    이 경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도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지역구 270석·비례대표 30석으로도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따른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이 너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십 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하면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주장하는 오픈프라이머리의 관철 가능성도 동시에 희박해진다. 새정치연합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정개특위에서 관철하지 못할 경우, 여당에만 오픈프라이머리라는 선물을 안겨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모두 정개특위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지역구가 늘어나고 비례대표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결국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새정치연합이 흔쾌히 수락해줄 수는 없는 방향이기 때문에, 정개특위 논의가 길어질 것"이라고, 8월 임시국회에서 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하는 의결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보통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함께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방안이다.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인구 수에 비례해 의석을 할당한 뒤 해당 권역에서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는 제도다.

    현재의 17개 광역시·도에 따라 전국을 17개 권역으로 나눌 것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지만(독일도 16개 주(州)별로 명부 작성), 올해 2월 24일 발표된 중앙선관위 안은 전국을 6개 권역(서울, 인천·경기·강원, 대전·세종·충남·충북,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광주·전북·전남·제주)으로 나눌 것을 제안하고 있다.


    ◆초과의석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며, 의원 정수가 법에 규정된 의석 수 이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때문에 독일 하원은 의원 정수가 598석인데도, 2013년 총선을 치른 결과 의원 수는 631명에 달한다.

    A라는 권역에 배정된 의석 수가 지역구 20석·비례대표 10석으로 총 30석이고, 총선 결과 갑(甲)당은 지역구 18석 당선에 정당득표 40%, 을(乙)당은 지역구 2석 당선에 정당득표 30%, 병(丙)당은 지역구 전원 낙선에 정당득표 30%를 기록한 상황을 가정해 본다.

    그러면 철저히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따라 A권역에서 갑당은 12석, 을당은 9석, 병당도 9석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갑당은 이미 지역구에서만 18석이 당선됐기 때문에 비례대표가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함에도 6석이 초과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이다.

    따라서 총선 결과 A권역의 각 정당별 의석 수는 갑당이 지역구 18석·비례대표 0석으로 18석, 을당은 지역구 2석·비례대표 7석으로 9석, 병당은 지역구 0석·비례대표 9석으로 9석이 된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A권역의 의석 정수는 30석인데 실제 의원 수는 36석이 된다. 이런 현상이 B권역·C권역·D권역 등에서도 잇달아 발생하게 되면 총 초과의석은 수십 석에 달할 수도 있다.

    게다가 해당 권역에서 가장 많은 정당득표를 얻은 정당이 정작 비례대표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다는 점은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 익숙한 우리 유권자의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국민공천제)

    정당의 공직선거 출마 후보자를 선정함에 있어 당원이 아닌 지역 주민의 일반 참여 경선을 통해 선출하는 제도를 뜻한다.

    비례대표가 없이 하원 435석 전체를 지역구(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만 선출하는 미국에서 발전한 제도이다. 일찍이 양당제가 발달해 온 미국에서 정당 지도부에 의한 하향식 공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됐다.

    누군가가 공직선거 출마 후보자를 내리꽂는 게 아니라 철저히 지역 주민에 의해 상향식으로 공천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정당 지도부에 의한 '인위적 물갈이'도 불가능하다. 현역 의원에 대한 심판이 필요할 경우 지역 주민에 의해 직접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향식 공천이더라도 당원 만의 경선일 경우 코커스(Caucus), 당원과 함께 미리 해당 정당의 지지자로 등록한 일반 유권자만 경선 참가 자격이 주어질 경우 클로즈드프라이머리(Closed-Primary)라고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제안한 국민공천제는 당원 뿐만 아니라 국민 누구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프라이머리(Open-Primary)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역선택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증 내지 신분증을 제시하고 특정한 한 정당의 투표용지만 교부한다는 점에 주목해 세미클로즈드프라이머리(Semi-Closed-Primary)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