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뒷걸음질, 8년 전 광우병 사태와 놀랍도록 닮아
  • ▲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메르스 격리병동.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메르스 격리병동. ⓒ 뉴데일리 이종현 사진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이하 메르스)의 병원 내 감염 확산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메르스 괴담에 이어 거짓 의학정보가 판을 치고 있다.

    특히, 보건당국의 어설픈 초기 대응, 부정확한 정보의 양산, 메르스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국민불안은 더욱 더 극심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메르스 괴담과 거짓 의학정보는 다음과 같다.

    '메르스는 공기 중으로 옮는 질병이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대부분 사망한다'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메르스를 예방할 수 있다'

    '실내 공간에 양파를 두면 메르스 예방 효과가 있다'

    '메르스 발원지가 평택미공군기지이다. 탄저균 감염 증상이 메르스 초기 증상과 유사하다'


    메르스 여파로 휴업하는 전국 유치원과 학교는 10일 현재 2,474곳(교육부 집계 기준)으로, 하루 사이 200여 곳이 늘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교육기관(약 2만곳)의 10%가 넘어선 규모로, 10곳 중 1곳 이상이 수업을 중단한 셈이다.

    이쯤 되면 전국이 '메르스 광풍'에 휩싸인 것과 진배없다.

    전 국민과 언론이 근거없는 '메르스 광풍'에 휩싸인 모습은, 7년 전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허무맹랑한 '광우뻥 괴담'에 전국민이 놀아난 광우병 파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1년 가까이 광우병 괴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촛불집회와 반정부시위가 이어졌지만,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광우병 괴담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메르스 광풍'도 '팩트'를 가장한 그럴 듯한 모습으로 포장돼,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 ▲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 모습. ⓒ 사진 연합뉴스
    ▲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 모습. ⓒ 사진 연합뉴스
     
  • ▲ 2008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광우병 괴담 게시글. ⓒ 뉴데일리DB
    ▲ 2008년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광우병 괴담 게시글. ⓒ 뉴데일리DB

    2015년의 메르스 광풍과 2008년의 광우뻥 괴담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더 있다. 바로 폭력과 광기 앞에 작아지는 지식인 특유의 유약함이다.

    <뉴데일리>는 지난 주 카톡과 페이스 북, 인터넷 상에서 작성자가 '군산의료원장'으로 표기된 '메르스' 안내 글과 관련돼, 본인 확인 및 해당 내용에 대한 취재를 진행했다.

    메르스를 코로나바이러스(감기)에 빗대 설명한 이 글은, 어이없는 괴담으로 들끓은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직 의사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글은 인터넷상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퍼나르기를 하면서,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조선일보는 의사출신 전문기자가 해당 글의 내용을 평가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메르스 백신은 없지만 치료법은 있다” 카톡에 의사들이 올린 글 타당성 있어> 조선닷컴 6월5일자.

    그러나 취재결과, 해당 글은 '군산의료원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해당 내용 중 일부가 짜집기 돼 군산의료원측이 해당 글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호흡기내과의 한 교수가 작성했다는 제보를 받아, 어렵게 본인 확인을 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이들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지인에게 받은 글로 내용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지인들에게 배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의사 모두 해당 글을 받은 지인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글을 준 지인이 해당 글을 직접 작성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고, 혹시 모를 곤욕을 치를까봐 꺼려진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메르스를 대하는 의료진의 심경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본지를 비롯한 다수 언론과 메르스 관련 인터뷰를 한 현직 의료진 상당수가, 자신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블라인드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모습도, 위 글이 남긴 씁쓸한 해프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숨을 죽이고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의료현장에서 매 순간 사투를 벌이면서,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의료진의 헌신은 두고두고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의료인과 학계 전문가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꺼내지 못하고, 광기에 눈이 먼 군중의 태도를 먼저 살피는 모습은 안타깝다.

    이들이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여론의 눈치를 보는 밑바탕에는, 무자비한 사이버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있다.

    언제든 자신과 가족을 인터넷상에서 발가벗기고 조롱할 수 있는, 누리꾼들의 잔인한 폭력성은 지식인들의 소신을 실종케 만든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사회적 혼란 극복에 앞장서기 보다는,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즐기기까지 하는 한국 언론의 천박함 역시, 지식인의 침묵을 조장하는 데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 소위 지식인이라 하는 이들은 이런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자위를 한다.

    ‘광우뻥 파동’ 당시에도, 선동세력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의 양심어린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식인들은 광우병 괴담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드러내놓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의 빈자리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차지해 괴담을 진실로 만드는 조작과 왜곡을 자행했다.

    외국 땅에서 건너온 광우병과 메르스, 허무맹랑한 괴담, 이를 선동하고 부추기는 언론, 주눅 든 지식인들의 유약함.

    8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한국사회는 놀랍도록 유사한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

    이런 현실은 한국사회가 적어도 8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내재적 발전을 이루는데 실패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의 적폐가 해소되고, 부조리가 줄어들었다면, 메르스 광풍에 시달리는 오늘의 모습이 8년 전과 쌍생아처럼 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동과 괴담의 늪에서 발을 빼야 한다.
    기회만 있으면 촛불을 켜고 반정부 구호를 목이 쉬어라 외쳐대는 고약한 버릇도 고쳐야 한다.
    촛불과 선동이 만들어낸 허상에서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8년간 현실을 변명삼아 군중 뒤에 숨었던, 지식인들의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