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등 ‘주요시설’은 내진설계…3층 미만 단독주택, 88년 이전 건축물 위험
  • ▲ 지난 4월 25일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도심의 모습. ⓒ러시아 투데이 보도화면 캡쳐
    ▲ 지난 4월 25일 네팔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도심의 모습. ⓒ러시아 투데이 보도화면 캡쳐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네팔에서 진도 7.8의 지진이 일어났다. 집계된 사망자 수는 8,000여 명에 육박한다. 구호활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12일 히말라야 산맥 지대에서 또 지진이 일어났다.

    같은 날 일본에서는 진도 6.6의 지진이 일어났다. 진앙지는 2011년 3월 11일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를 냈던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일어났던 곳 인근이다.

    최근 일명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 곳곳에서 지진과 화산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 이후에는 “한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견들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지진에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을까. 정부 부처, 전문가들의 의견대로라면, 한국에서 진도 7.0 이상이 지진이 일어나면,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재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내진설계 대상:
    대형건물, 대형병원, 관공서, 인프라


    정부가 건축물을 지을 때 ‘내진설계’를 적용하라고 법으로 정한 것은 1988년부터다.

    당시 정부는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 이상의 건물, 바닥면적 1만 ㎡ 이상인 판매 시설, 5,000㎡ 이상인 관람집회시설, 1,000㎡ 이상인 종합병원, 발전소, 공공업무시설은 ‘내진설계’를 반드시 적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때 내진설계 기준은 진도 6.0의 지진까지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500년 마다 한 번 있는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5년 정부는 1,000년 마다 한 번 있는 지진에 견딜 수 있을 정도의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하고 적용토록 했다. 현행 ‘내진설계 기준’은 2,400년 마다 한 번 일어나는 지진, 즉 진도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2009년 법률을 개정한 뒤 적용하고 있다. ‘내진설계’를 의무적용 해야 하는 건축물도 3층 이상, 연면적 연면적 1,000㎡ 이상의 건물로 대폭 확대했다.

    이 설명만 보면 ‘내진설계 기준’이 상당히 높아진 것처럼 보인다. 모든 건물이 지진에 견딜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여전히 ‘빈틈 투성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토목구조기술사회 등에 따르면, 현재 정부 주요청사, 교량, 도시철도와 철도, 도시가스 시설, 댐과 수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변전소 등 발전시설 등에 대해서는 내진설계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보강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웬만한 관공서, 가스 공급시설, 철도, 도로, 교량, 발전시설에 대해서는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쉽게 표현해 강도 6~8 정도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 ▲ 한국시설안전공단에서는 내진설계에 대한 기준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화면 캡쳐
    ▲ 한국시설안전공단에서는 내진설계에 대한 기준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화면 캡쳐

    하지만 빈틈은 다른 곳에 있었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 그 가운데서도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등이다.

    관공서나 대형 아파트, 주상복합건물, 대형 오피스 빌딩은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이 대부분이어서 이를 적용하지 않으면 ‘준공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개인들이 짓는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오래된 건물의 경우에는 설계 및 건축비용을 이유로 내진설계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 이후 드러난 한국의 현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지진’과는 무관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어도 한국 사회는 이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 도호쿠 대지진 이후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내진설계’ 실태에 대해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11년 3월 소방방재청이 국회에 보고한 데 따르면, 한국에 있는 전체 건축물 680만여 개 가운데 ‘내진설계 적용대상’은 약 100만 개였는데, 이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16만 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중에서도 초중고교의 경우 진도 5.5~.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13%에 불과했다. 전국의 1만 8,329개 학교 중 2,417곳만 지진에 어느 정도 견딘다는 뜻이었다.

    정부가 직접 건설한 교량이나 터널, 도로, 철도의 경우에는 내진설계가 적용된 곳이 많지만, 지자체들이 건설한 교량은 36%, 터널은 53%만이 내진설계를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 부처나 국회 시설은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일정 수준의 내진설계가 적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 12월 완공한 세종로 정부청사는 진도 5~6 정도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고 나왔고, 1982년 완공된 과천정부청사는 진도 4~5, 1997년 12월 완공된 대전정부청사는 진도 5~6, 2012년 완공된 세종정부청사는 진도 6~7의 지진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 경우 1975년 완공된 국회의사당 본관은 지진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반면 의원회관은 진도 6~6.5, 최근 새로 완공한 제2의원회관은 진도 6~7의 지진에 버틸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2011년 3월 국회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2014년까지도 개선된 점은 거의 없다.

    201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중 9만 5,866동이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이지만, 이 중에서 3만 5,520동만 내진설계를 적용했다고 한다. 나머지 6만여 동의 아파트는 대부분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즉 재건축 수익을 노리고 ‘낡은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들은 지진 한 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에도 만들어진지 오래된 1~4호선의 경우에는 전체 노선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구간이 3.6%에 불과하다고 한다.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구간 가운데는 고가, 교량, 지하터널 구간도 53.2km나 된다고 한다.

    다른 광역지자체 가운데 경남, 인천, 경북 등은 공동주택의 90% 이상에 내진설계가 적용된 상태다. 지하철은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노선 모두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통해 ‘내진설계’ 적용의 부실함을 지적했지만, 여기서도 빠진 부분이 앞서 언급한 단독주택과 연립주택들이다. 


    한국에서 지진 일어나면? 네팔은 ‘장난’


    국회의원들은 ‘표’만 생각해서인지 대형 오피스 빌딩과 지하철 등 인프라 시설, 대형 공동주택(아파트), 주상복합주택 등의 ‘내진설계’ 자료들을 주로 공개하고 있다. 서민 주거지인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의 ‘내진설계’ 적용률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 ▲ 대우건설 학생기자단이 블로그에 올린 자료. 현재 정부나 국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진설계 관련 자료는 대부분 대형건축물 위주다. ⓒ대우건설 학생기자단 블로그(http://byable.egloos.com) 화면 캡쳐
    ▲ 대우건설 학생기자단이 블로그에 올린 자료. 현재 정부나 국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내진설계 관련 자료는 대부분 대형건축물 위주다. ⓒ대우건설 학생기자단 블로그(http://byable.egloos.com) 화면 캡쳐

    그나마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 2005년 4월 국회 대정부 질의 당시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였다. 이 자료를 보면 전국 635만 6,572개 건축물 가운데 내진설계를 적용한 곳은 9만 5,809개에 불과했다. 비율로는 1.5%였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2004년 3월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전국의 단독주택 403만 8,680개 중 960개, 공장 18만 2,554개 가운데 1,706개, 할인점이나 백화점, 마트와 같은 유통판매시설 1만 1,704개 가운데 678개만이 ‘내진설계’를 적용했다고 한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업무시설은 2만 20개 가운데 9,348개에만 ‘내진설계’가 적용돼 있다고 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에는 사정이 심각하다. 2011년 5월 기준으로, 서울의 건축물 65만 9,030개 가운데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은 4만 6,367개, 7% 내외라고 한다. 이는 무허가 건물은 뺀 수치다.

    즉, 만약 한국에서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다면, 집에서, 마트에서, 백화점에서, 공장에서 죽거나 다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50%의 확률로 살 수도 있으리라.

    이후 10년 사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대형 건축물 위주로만 ‘내전설계’를 적용했을 뿐이다. 이제는 서민 주거형태로 꼽히는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의 경우 지진이 일어나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한국 사회의 ‘내진설계 기준’과 적용비율을 보면서, “만약 한국, 특히 수도권에서 진도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다면 사망자 100만 명, 부상자 1,000만 명이 발생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한다.

  • ▲ 2011년 3월 11일 日도호쿠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호쿠 대지진 당시 보도화면 캡쳐
    ▲ 2011년 3월 11일 日도호쿠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호쿠 대지진 당시 보도화면 캡쳐

    이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진 빈도 증가와 함께 한반도 지각도 안전하지 않다는 연구결과, 과거 화산폭발과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역사기록들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 등 정부에서는 “2000년 이후 지진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면서 지진 강도가 세지고 빈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런 ‘듣기 좋은 말’보다는 국민들 스스로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1924년부터 '내진설계'를 의무적으로 적용토록 한 일본처럼은 아니라 해도 현재의 내진설계 적용기준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