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예우 갖춰 자연스럽게 물러날 퇴로 열어준 것" 청와대 안팎 해석에 무게
  •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국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국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금 여러 가지로 당면한 현안들이 많이 있어서 그 문제들을 수습을 먼저 해야 되지 않겠느냐,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는) 그래서 그 일들이 끝나고 나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 가능성을 시사했다.

    상당히 이례적인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크고 작은 논란 속에서도 '비서실장 교체론'을 일축했었고,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직후에도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私心)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고 언급하며 여론의 인적쇄신 요구를 거부했었다.

    하지만 며칠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선 "김기춘 실장에게 최대한 예우 갖춰 명예롭고 자연스럽게 물러날 퇴로를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최근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항명(抗命) 파동으로 자칫 청와대 비서진 운영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의 교체를 사실상 확정지은 게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진다.

    "김기춘 실장의 리더십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퇴진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기류다.

    '집권 3년차 구상'이 시작부터 꼬여버릴 위기에 처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최측근인 김기춘 실장의 교체를 선택할 정도로 큰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교체 시점이다.

     

    #. '5월 교체론'이 나오는 이유

    김기춘 실장의 교체 시점을 두고 청와대와 여권 안팎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향후 정국구상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자리인 만큼 섣불리 교체카드를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김기춘 실장이 공무원연금 및 노동시장개혁 등 핵심 구조개혁을 마무리한 뒤 오는 5월쯤 정홍원 총리와 함께 물러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지난 2일 악화된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기강 확립을 강조한 김기춘 실장의 시무식 발언을 공개한 점, 김기춘 실장 스스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점 등이 '5월 교체론'을 뒷받침한다.

     

    #. '2월 교체론'이 나오는 이유

    반면, '2월 교체 가능성'을 예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교체는 사실상 확정됐다. '허수아비'로 전락하느냐의 문제다. '어차피 물러나는 비서실장의 지시를 따를 이가 얼마나 될 것이냐?' 이러한 고민은 곧 청와대 비서진 운영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허수아비'라는 회의감에 사로잡힐 바에야 김기춘 실장 스스로 퇴진을 준비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부담을 덜 수 있고, 김기춘 실장은 '자진사퇴'라는 명예를 가져갈 수 있다. "물러날 때 물러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김기춘 실장은 이미 비서진의 모범으로 꼽힌다. 그런 김기춘 실장이 굳이 후임에게 떠밀려 나가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 ▲ 지난 9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 파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 9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 파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7개월이냐, 10개월이냐' 동력의 문제 

    시간도 그리 넉넉치가 않다. '3년차 집권'의 부담과 동력에 대한 얘기다. 5월까지 비서실장 교체를 늦출 경우, 남은 시간은 7개월. 하지만 2월 중 비서실장을 조기에 교체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3개월의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이미 '답답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실장을 붙잡는 그림도 나오기도 힘든 형국이다. 결국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선 비서실장의 교체 시기를 좁혀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통일을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포부와 경제 대도약 구상을 둘러싸고 '2월 교체론'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특보단 구성과 조직개편이 키워드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수석과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특보단의 신설과 청와대 조직 개편을 언급한 것도 김기춘 실장의 조기 교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보단이 맡게 될 역할은 이날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당청 간 소통을 통한 정책협의, 대국민 소통을 위한 홍보과 함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본격적 성과를 낼 경제-정책 부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역할을 맡게 될까? 박 대통령이 특보단 구성을 구상하게 된 배경에는 청와대 비서실이 국가적 전략을 수립하면서 현안과 세부적인 정책을 이끌고, 여기에 소통까지 강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깔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체될 김기춘 실장에게 특보단 구성이라는 역할 모두를 맡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陰害論'이 청와대 내부 갈등 키워

    일부 언론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추론을 무기로 청와대를 흔들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기춘 실장과 김영한 전 민정수석 간의 갈등을 전제로 불통설(不通說)은 물론, 심지어는 '왕따론'까지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기춘 실장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김영한 전 수석이 주요 업무에서 오랫동안 배제돼 왔다고 주장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런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항명 파동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보도들이 청와대 내부 갈등을 키웠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선 "그 점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어찌됐든 일부 음해론이 청와대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하는 타이밍은?

    이미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 어느 때보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이에 정치권 안팎에선 "김기춘 실장의 교체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비판섞인 목소리가 비등하다. 눈치를 볼 겨를이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심정으로 국정에 새롭게 몰입하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이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제언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당면한 과제들이 많아 그 문제들을 먼저 수습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김기춘 실장 교체 문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가지를 감안한 뒤 "좀 더 시간을 달라"는 메시지를 신년 기자회견에서 던진 것으로 읽힌다. 판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다. 2월 중으로 교체할 지, 5월을 바라볼 지,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은 거듭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