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교과서 수정되지만 중학교 교과서도 수정돼야
  • ▲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진 ⓒ 국가보훈처 제공
    ▲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진 ⓒ 국가보훈처 제공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유관순 열사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한 바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문제지만 중학교 교과서도 문제였다. 특히 유관순 열사를 교과서가 다루지 않게 된 배경으로 제시된 논문을 검토해 그 심각한 결함을 논증한 바도 있다.

    당초 고등학교 교과서는 8종 중에 4종이 유관순 열사를 다루지 않고 있었다. 금성, 두산동아, 미래엔, 천재교육 등의 출판사 본이 누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문제다.

    교학사, 금성, 비상교육, 천재교과서, 천재교육 등에서 해당 본문과 참고자료에서 유관순 열사를 다루지 않고 있었다. 천재교육의 경우는 참고자료로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소개를 하고 있으나 해당 장으로부터 멀리감치 떨어져 있었다. 비상교육은 전체 중학교의 약 25% 점유율을 보일 정도로 채택률이 가장 높은 교과서이다.

    차제에 중학교 교과서의 경우도 수정이 필요하다.  

    지난 8월 교육부 주최 토론회에서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는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있기에 기술하지 않은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 연구 성과라는 논문을 살펴보니 출발부터 큰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제가 있는 연구 결과를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 들이며, 더욱이 마치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역사학계의 일부가 휩쓸려 갔던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문제를 파고 들며 유관순 열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생이며, 1916년 이화학당에 입학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시위를 조직하였다.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군 헌병대에 끌려갔다. 이날 시위 중 유관순 열사의 부모를 비롯한 19명이 죽고 유관순 열사는 체포되었다고 한다.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 재판 중 일본인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모독죄까지 추가 되었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며 수감 중에도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1920년 일제의 갖은 고문에 시달리다 옥사하였다.

    유관순 열사의 이런 행적을 접하며 저절로 숙연해짐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이토록 어린 나이에 이런 결기로 항거할 수 있었단 말인가? 유관순 열사는 진정 길이길이 후대에 교육하여 본을 삼기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라 생각된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사 교과서에서 유관순이 삭제된 그 경위이다. 한쪽으로 경도된 역사 인식이나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주관적이고 편협한 역사관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관이나 관점의 차이가 있더라도 혹은 좌든 우든,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더더욱 실증에 충실해야 하며 사실과 객관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선을 정해 놓고 거기에 끼워맞추듯이 접근해서는 객관적인 연구가 될 수 없다.

  • ▲ 스토리케이 이종철 대표가 '남북한 역사 교과서'를 분석하고 있다. 2014.10.10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
    ▲ 스토리케이 이종철 대표가 '남북한 역사 교과서'를 분석하고 있다. 2014.10.10 ⓒ 뉴데일리 김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