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초기 대응, 무기력한 黨-靑 경우의 수 따지지만...
  • 전망은 계속 어둡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 집무실로 출근했다.
    지난주 논란에 강경 대응하던 모습은 다소 사라진 표정이었다.

    문창극 후보는 "오늘은 할말이 없다. 조용히 할일 하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지난 21일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접촉이나 교감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정부분 상황 변화는 감지되는 모습이다.


  • ▲ 출근하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 이미화 기자
    ▲ 출근하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 이미화 기자

     

     

    1. 문창극 후보에 대한 청문회 통과 전망은 처음부터 비관적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정치권도 놀라는 반응으로 시작해 부정적인 기류로 흘러갔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전 원내대표는 문 후보자를 '극우 보수 논객', '극우 꼴통'이라고 저주하며 처음부터 낙마를 예고했다.

    사상 최초 언론인 출신 국무총리에 언론들도 기대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중앙일보'라는 특정 매체로 귀결되는 문 후보의 정체성은 다른 경쟁 매체들의 긴장감을 샀다.

    브라질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조별 예산 탈락을 예고한 [똑똑한 척], [객관적인 척], [중립적인 척] 하는 일부 언론들과 한국 축구팬들의 저주와 비슷하다.


    2. 공격력은 그럭저럭, 수비가 엉망이었다.

    문창극 후보는 총리 임명 발표부터 공격의 대상이었다.

    언론인 시절 쓴 매서운 칼럼부터 왜곡된 교회 간증 발언까지.

    문 후보자는 정치권과 언론의 계속된 공격에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다름 아니다.
    국정 지지율 하락을 걱정하는 청와대와 7.30 재보궐 선거에만 정신이 팔린 새누리당의 비협조로 문 후보는 혼자 싸울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5박6일간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떠난 이후 서청원 의원 등 피아(彼我) 구별도 못한 친박 실세들까지 공격이 벌어지자 문 후보자는 그제서야 반격을 시작했다.

    왜곡 보도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과 "청문회에서 모두 설명하고 돌파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이끌어 냈지만,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뭔지모를 들뜬 분위기로 경기를 시작해 3골을 헌납한 뒤,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2골을 따라간 23일 새벽 알제리와의 월드컵 경기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3. 경우의 수 따지긴 하지만, 전망은...


    강행 돌파를 견지하는 문창극 후보에게 언론들은 계속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다.

    자진사퇴, 임명철회, 청문회 강행.

    하지만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임명 동의안 재검토'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청문회를 강행할 명분을 찾는게 쉽지 않다.
    임명철회도, 자진사퇴도 마찬가지다.

    청문회를 강행한다 해도 현재의 여론과 정치권 분위기로는 과반 찬성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1무1패 성적으로 마지막 조별 예선 통과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한국 축구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벨기에를 2골 차 이상으로 승리하고 러시아가 알제리와 비기는 등, 복잡한 상황을 예상하긴 하지만 16강 진출이 매우 어려워진 건 매한가지다.


  •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5박6일간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다. ⓒ 뉴데일리
    ▲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5박6일간의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고 있다. ⓒ 뉴데일리

     

     

    4. 무기력하고 답답했다. 감독.


    이번 사태를 지나가면서 문창극 후보를 임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안대희 후보자의 낙마 이후 검증과 또 검증을 거쳐 발탁한 인사지만, 왜곡된 보도와 예상할 수 있었던 정치권의 반발에 청와대는 기대 이하의 대응 수준을 보여줬다.

    여론의 눈치만 봤고,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고립무원'에 빠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특별한 조치 없이 이역만리 중앙아시아로 날아갔다.

    조윤선 정무수석 등 직전에 교체된 신입 참모들의 업무보고를 받고 순방 전용기 내에서 '임명동의안 재검토'라는 무책임한 반응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21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22일 수석비서관회의를 비서실장 주재로 넘겨버렸고, 문 후보자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첫 출근을 한 23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아는 것이 없다. 특별히 말씀드릴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근호, 손흥민, 구자철 등 신형 공격진들이 팔팔 뛰는데도 끝내 박주영만 고집해 패배의 단초를 제공한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그랬다.


    5. 그래도 끝까지 돌파해야, 그래야...


    정치권과 언론은 문창극 후보의 자진 사퇴가 그래도 박근혜 정부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이라고 분석한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그렇다.
    작금의 상황을 끝까지 버티는 문창극 후보의 탓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상황은 최악이다.
    더 이상 악화될 수 있는 여지도 없다는 평가는 간과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가 자진사퇴를 하던지, 박 대통령이 임명철회를 하던지 세월호 참사 이후 선언한 국가개조 수준의 개각과 개혁은 어려워진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임명한 내각 수반 후보자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행태다.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은 앞으로 대통령의 최고 권한인 [인사권]의 권위를 무너트렸다.

    가뜩이나 쓸만한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박근혜 정부가 더욱더 인재난에 빠질 공산이 크다. 문창극 후보의 청문회 돌파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동된 여론을 겁내고, 그 뒤에서 사실을 왜곡하는 정치권과 수구 언론들을 무서워 해서는 남은 3년 박근혜 정부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진다.

    비관적 전망과 낮은 가능성에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가 마지막 벨기에 전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