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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지금 건설하려 했다면 가능했을까?

이어도... 전설로 남고 싶어하다

입력 2013-12-17 13:38 수정 2013-12-19 23:21

이어도 과학기지

건설을 회상하며


-심재설 박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KISTI 부설 해양연구소로 창립된지 40주년이 되는 지금,
그 40년 동안 우리 해양과학기술원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던 큰 발자취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생각나는 것을 꼽을라 치면
2003년에 완공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이어도 기지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양과학기지일 뿐만 아니라
매년 여러 개의 태풍이 지나는 매우 열악한 곳에 있지만
그만큼 관측 중요성이 높은 해역에 위치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해양과학기지이다.

또한 이어도 기지는
국내 해양구조물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의 [Offshore 구조물 및 공사]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는 우리 해양과기원 창립 40주년일 뿐만 아니라
이어도 기지가 완공된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쉼없이 몰아치는 거센 바람과 격랑을 견디며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는
이어도 기지를 보고 있노라면
기지 건설 당시의 숱한 역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984년과 1986년, 당시 한국해양연구원은
제주 KBS, 그리고 제주대학교와 공동으로
전설 속의 이어도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재의 이어도 해역을 탐사하였다.

탐사 결과 확보된 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수심 4.6m 아래에 있는 수중암초가 [전설 속의 이어도]라고 잠정 결론지었다.


이후 해양수산부는
이어도로 인한 해양사고를 방지하고,
이 해역에 대한 해양관측을 목적으로 부이를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이들은 태풍 등으로 인해 오랜 기간 관측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 해역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안정적인 관측수행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 연안방재연구사업단 이동영 박사가,
해양관측탑을 건설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후 대형 해양구조물로서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는 것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후 1997년에는 해양관측부이를 설치하여 기지를 설계하기 위한 환경조건을 조사하였고,
이듬해인 1998년에는 해저지반조사도 수행되었다.


해저지반조사 결과,
이어도 해역의 해저 지반은 단단한 암반이 아니라
표층 몇 미터 정도만 단단한 응회암으로 되어 있었을 뿐,
그 아래는 모래와 점토로만 되어 있었다.
마치 겉만 단단하고 속은 말랑말랑한 초코파이 같았다.

지반조건이 예상보다 약했기 때문에,
Skirt Pile 공법이 제안되었다.
이는 기존 4개의 파일 외에 추가로 4개의 파일이 추가되는 공법이다.
2000년 7월에는 설계된 구조물에 대한 축소모형 실험이
한국해양연구원 대덕분원 수조에서
실제 크기의 1/80로 제작된 모형을 가지고 수행되었고,
2001년 5월에는 현대건설 기술연구소에서 이어도 기지에 대한 풍동실험도 실시하였다.

이는 해양구조물에 대한 최초의 풍동실험이었다.
이로써 해양의 악조건과 거센 비바람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해양구조물임을 검증하였다.

이렇듯 한창 이어도 기지에 대한 설계와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중국 외교부로부터
이어도 기지 건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서한이 접수되었다.

당시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연구원, 그리고 외교부는 이에 대해
국제법상 관례에 따라 배타적 경제수역을 따졌을 때
이어도 해역은 우리측 영역에 포함됨을 근거로 하여
이어도 기지 제작을 계속 수행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어느덧 12년 전의 일이 되었다.
현재의 중국이라면 과연 이어도 기지 공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매우 적절한 시기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2001년 8월부터 2002년 9월까지 약 1년 여 동안,
울산의 현대중공업은 이어도 기지의 데크 부분을,
목포 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쟈켓 부분을 제작하였다.

2002년 9월 30일,
드디어 이어도 기지 하부 구조물인 쟈켓이 먼저
목포에서 이어도 해역으로 출발하였다.

쟈켓은 10월 2일,
이어도 기지 설치 현장에 도착하여 잔잔한 해상 상태에서
GPS 시스템을 이용하여 정위치에 쟈켓 구조물을 내려 놓았다.

이어도 기지의 쟈켓 방향 오차는 1° 이내로 맞춰져
계획된 오차 범위내에 설치되었고,
수평 설계 오차범위도 맞추어
쟈켓을 정위치시켰다.

 
 


그러나 쟈켓 설치가 한창 진행되던 중,
예상치 못한 10월의 폭풍이 이어도 기지 설치 현장을 덮쳤다.
일주일 이상 3m 이상의 파도가 몰아쳤고,
강풍은 초속 40 m 이상까지 불어댔다.

그러던 중 바지선 한 대의 앵커라인이 모두 끊어져 버렸다.
동력이 없는 바지선이
선장을 태우고 해류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예인선이
상하이 인근 해상까지 흘러간 바지선을 찾아 되돌아오긴 하였으나
아찔한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쟈켓 설치는 마무리되었다.

당초 설치에 보름을 예상하였지만,
실제 소요된 시간은 거의 한 달에 이르렀다.
이미 10월말에 이르러
북쪽에서는 차갑고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02년에 상부구조물까지 올려 기지를 완공하려던 계획은
바다가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해로 넘기기로 했다.

2003년 4월,
이어도 기지의 상부인 데크가 울산항에서 이어도를 향해 출발하였다.
데크 설치 작업은
이어도 기지 설치 작업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작업이었다.

부디 바다가 공사에 협조해주기만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데크를 실은 바지선이 이어도 해역에 도착할 즈음,
다시 시련이 닥쳤다.
태풍 <구지라>가 발생하여 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4월에 태풍이 발생하여 북상하는 건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어도 기지 설치팀은 정말 이어도를 지키는 용왕이 있어,
인간이 이어도를 손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인간이 획득한 과학의 힘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자연의 위력 앞에 경외감이 들었다.
이런 경외감이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는 신앙이 되었을 것이리라.
어쩔 수 없이 설치팀은,
다시 제주 한림항으로 피항하였다.
해양구조물 공사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데크를 실은 바지선이 다시 이어도 해상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혹독한 겨울바다를 견디고 선 쟈켓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해상상태는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크레인선의 대형 크레인이 데크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다시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우리 공사를 방해하는 신적인 존재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쟈켓의 레그 부분에 데크를 결합하면 가장 큰 공정이 마무리되는 것이었지만,
바다가 일렁거리면서
크레인 기사가 도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8시간 동안의 노력 끝에
드디어 쟈켓 위에 데크를 결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작업선들 위, 여기 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무뚝뚝해서 감정 표현에 무척 인색한 뱃사람들에게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동안의 목숨을 건 힘들고 위험한 공사과정이 없었더라면,
이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2003년 6월,
이어도 기지에 대한 첫 점검이 이루어졌다.
통신-관측-전기 등 각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연구원 및 운영요원들의 생활에는 지장이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도 기지에 대한 많은 언론사들의 취재와 언론보도가 이어졌다.
이어도 기지가 태풍을 사전에 관측하여
태풍피해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태풍 <매미>가 북상하였다.
이어도 기지의 성능을 시험해볼 절호의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어도와 관련된 시련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태풍 <매미>가 북상하고 있는 와중에 이어도 기지의 시스템 작동이 중단되었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해 태풍을 감시하는 첨병이라고 국민들게 소개했던 내용이
모두 거짓말이 될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기지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태풍 <매미>가 접근하면서 악화된 기상은
해양경찰의 헬기 지원을 불가능하여
차선책으로 선박을 빌려 이어도 기지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렵게 어선의 선주님을 설득해 출항할 수 있었다.
태풍 <매미>가 북상하기 불과 이틀 전의 일이였다.

운영요원들을 태운 10톤 정도의 선박은 통신장비 미비로
이어도 기지에 도착해서 시스템을 정상화시킨 후,
기지 통신시스템을 통해 상황을 전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해양연구원에 위치하고 있었던 이어도 기지 운영센터에서는
운영요원들이 기지에 도착했다는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파도를 감안해서 넉넉하게 예상한 도착예정 시간을 3시간이나 넘겨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질 않았다.
일일여삼추라는 말이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최악의 상황들이 자꾸 머릿 속에 떠올랐고,
운영요원들의 목숨을 담보로 무리한 결정이었던 것 같아
해양연구원 기지운영센터에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어도 기지에서 오는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전화벨이 울리고 운영요원들의 반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또렷이 전해졌다.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벅차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전화통화를 하기 힘들 정도로 목이 메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나 뿐이었다.

“고생했다.
파도가 높으니 안전하게 나오라.”


이어도로 출발하기 전,
담아 두었던 기지시스템의 고장에 대한 원망과 질책의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무사함에 마냥 감사할 따름이었다.

운영요원들의 용기와 책임감, 그리고 희생정신에 힘입어
이어도 기지는 우리나라에 내습한 최대의 태풍 <매미>를 사전에 관측할 수 있었고,
각종 언론매체들을 통해
이어도 기지에서 관측되는 생생한 태풍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어도 기지가 건설되자마자 그 가치를 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
천국과 지옥을 며칠 사이에 번갈아 경험했다는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도 기지는
태풍의 길목에서 한반도를 지키는 첨병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2007년부터는 이어도 기지의 운영권이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인계되었다.




1997년부터 이어도 기지를 계획-설계-제작, 그리고 설치에 이르기까지
고민하고 공 들였던 세월이 영화 필름처럼 떠올랐다.
남의 집에 딸을 시집 보내는 아비의 마음이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잘 관리하고 운영해 주십사 하였고,
혹시나 우리 연구팀이 미처 배려하지 못한 건 없는지 마음이 쓰였다.

앞으로도 이어도 기지는 적어도 40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만약 이어도 기지가 그 수명을 다하고 바다 속으로 잠들어갈 때,
그 자리는 누가 또 대한민국의 해양임을 알도록 지키고 서 있게 될 것인가?
그게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요즘 들어 해양으로 힘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을 보았을 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오늘이다.
이어도 기지는 우리 세대가 후대에 남기는 자산이자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숙제라 생각한다.

50년 후에도 우리나라를 지키는 해양의 첨병으로 이어도 기지가 굳건하게 서 있길 바라며,
이어도 기지를 통해 우리나라의 해양력이 더욱 견고해져 있길 기원해 본다.

[사진출처=한국해양과학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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