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빨리 북한으로부터 생존 국군포로 송환해야"탈북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 이구동성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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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선을 넘어 80고령의 노구를 이끌고 탈북해 온 국군포로들은
    하나같이 울분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생환(生還) 국군포로 초청 오찬간담회>에는
    국군포로와 자녀들, 유관단체 및 물망초 회원들로 꽉 찼다.

    이 행사는
    탈북자와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국회의원)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마련한 것.

     

  • ▲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과 국군포로들 ⓒ 물망초 제공
    ▲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과 국군포로들 ⓒ 물망초 제공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은
    국군포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탈북 국군포로들은
    군사비밀로 명명하고 통제하며 숨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영웅으로 모셔야 할 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이분들은
    매년 노환과 질병으로 소리 없이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계신다."

     

  • ▲ 6.25 국군포로가족회 유영복 명예회장 ⓒ 물망초 제공
    ▲ 6.25 국군포로가족회 유영복 명예회장 ⓒ 물망초 제공

     

    국군포로대표로 감사인사를 전한
    6.25 국군포로가족회 유영복 명예회장은
    "우리는 북한에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대한민국이,
    UN이 우리를 구해주리라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
    비전향장기수가 67명씩 북한으로 돌아와 영웅대접을 받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북한 땅을 밟을 때도
    우리 국군포로들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 힘으로 조국에 돌아오기로 마음먹고 죽기를 각오하고 사선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숨진 동료들만 해도 내가 아는 사례가 약 10여명이나 된다. 심지어는 중국 땅으로 넘어왔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 다시 붙잡혀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동료도 있다. 북한국경을 넘다가 죽은 동료는 더 많다. 계획했다 실패한 동료들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한민국에 와서도 국민들 앞에 나서지도 못 하게 한다.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9월 9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국군포로들을 국정원으로 초대해
    [선배님들, 정말 죄송하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존재를 몰랐던 게 아니고,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이 비겁했다"며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 줬다.

    난생 처음으로 국정원장으로부터 추석선물도 받았다.
    정말 고마웠다.
    선물이 고마워서가 아니라, 우리를 기억해줬다는 점에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북한에서 강제구금 상태로
    탄광지역에 생존해 있는 우리의 동료들이다.

    하루빨리 이들이
    사랑하는 조국과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 탈북민복지연합회 손명화 회장 ⓒ 물망초 제공
    ▲ 탈북민복지연합회 손명화 회장 ⓒ 물망초 제공

     

    국군포로 자녀를 대표해서 답사를 한 탈북민복지연합회 손명화 회장은
    "아버지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국군포로라는 딱지로 43호로 불리며
    아오지탄광에서 막장노동을 해야 했던 우리 아버지는
    20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나를 불러

    [너만은 꼭 내 고향으로 가서 내가 살아있었음을,
    니가 내 핏줄이라는 사실을 조국과 친척들에게 알려 달라]고
    유언하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보위부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도
    이곳, 내 아버지의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조국은 너무 냉담했다.
    국군포로에 대한 말은 밖에 나가 하지도 못 하게 한다.

    국군포로와 그 자식들은
    북한에서 52번째 계급으로 묶여 공부를 할 수도 없고
    군대도 갈 수 없는 최하층민 생활을 해야 했는데,
    조국에 와서도 똑같다."


    손 씨는 "내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노래"라며
    [그리운 내고향 사모곡]을 연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 아버지는 물론,
    조국을 그리다 북한에서 돌아가신 국군포로 어르신들,
    그리고 지금도
    서럽게 남쪽 하늘만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 하실
    국군포로 할아버지들께 들려드리고 싶다."

     

  • ▲ 재미동포인 정용봉 박사 ⓒ 물망초 제공
    ▲ 재미동포인 정용봉 박사 ⓒ 물망초 제공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립, 그동안 미주지역에서 활동한
    재미동포인 정용봉 박사는 이날 축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6.25때 소대장으로 참전했던 나는
    평생을 내 소대원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혼자 힘에 부쳐 어려움도 많았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국군포로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북문제를 논의할 때 항상 국군포로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가능하면 최우선 과제로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 ▲ 재미동포인 정용봉 박사 ⓒ 물망초 제공

    국군포로송환위원회는
    6·25전쟁 참전용사인 정용봉 박사가
    200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들어 운영해오다
    물망초에 양도했다.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의원)는
    그동안 운영해온 국군포로신고센터의 상부 조직으로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설치하고
    2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무실에서
    위원회 현판식을 열었다.

     

     

  • ▲ 김현 변호사: 국군포로송환위원장, 국군포로신고센터장 ⓒ 물망초 제공
    ▲ 김현 변호사: 국군포로송환위원장, 국군포로신고센터장 ⓒ 물망초 제공

     

    국군포로송환위원장과
    국군포로신고센터장을 맡은
    김 현 변호사(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우리 사회가 힘을 써야 할 때이다.
    그분들의 평균 연령이 87세다."

     

  • ▲ 김민정 청소년 발레단 ⓒ 물망초 제공
    ▲ 김민정 청소년 발레단 ⓒ 물망초 제공

     

    이날 한국 청소년들은
    생환해 오신 국군포로 어르신들을 위해
    아름다운 발레 공연을 했다.

    김민정 청소년 발레단이 자선공연으로 마련한 것.

    국군포로분들은
    [생전 처음 발레를 직접 봤다]며 감격해 했다.

    점심시간에는 탈북자들로 구성된 모란봉예술단이
    북한의 노래와 춤으로 할아버지들의 흥을 돋우었다.

    앞서 사단법인 <물망초>는 지난 4월,
    국군포로 113명이 함경북도 온성군 지역에 생존해 있다고 발표한 뒤,
    아직도 약 350여 분의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물망초>는
    한-미 변호사들과 공동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김정은을 전쟁범죄 현행범으로 제소하기 위한
    소장 작성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