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와 박근혜, 그리고 5. 16 논쟁에 부쳐

      


  • 역사적 사건 사태 사실은 세월이 한참 지나면 호불호(好不好)의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5. 16은 과거인가 현재인가? 박정희 시대에 소용돌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으니 현재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5. 16은 이젠 과거일 수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반대쪽에 있었던 사람들, 오늘날 박근혜 씨와 대권을 겨루는 사람들, 특히 범좌파 사람들은 그것을 현재로 되살려 매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상관없이 역사는 그래도 그것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열차를 타고 달린다.

    5. 16은 쿠데타인가 혁명인가? 이걸 가지고 또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박근혜 씨와 대척점에 있는 쪽이 노무현 시대에 뉴 라이트 학술운동을 하던 박효종 교수가 박 씨 캠프에 들어간 것을 트집 잡아 그와 그의 그룹이 5. 16을 쿠데타 아닌 혁명으로 미화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매도한다는 것이다.

    박효종 그룹은 5. 16을 포함한 우리 현대사를 공(功)과 과(過), 빛과 그림자라는 두 측면에서 공정하게 다 바라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좌파의 수정주의 사관(史觀)이나 이른바 ‘민족민중 사관’이 우리 현대사를 너무 편파적이고 나쁘게만 해석하는 데 대해, 그림자 부분은 그림자로서 보더라도, 빛의 부분도 “저건 빛이다”라고 허심탄회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그 아닌 학문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자세다.

    그렇다면 5. 16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중남미 군부 등, 전근대적 과두세력(oligarchy)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는 본인들도 남도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집트의 나세르가 일으킨 쿠데타는 쿠데타적 집권이었지만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시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前者)가 전근대적 특권과 독점을 유지하기 위한 반동적 물리력일 뿐인데 반해, 후자(後者)는 그 후의 근대화 노력, 즉 미래지향적 체제전환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나세르 쿠데타는 오늘의 중동 민주화 혁명의 먼 1장 1절이었다는 이야기다.

    나폴레옹 1세는 쿠데타로 집권해 스스로 황제가 되고 제정(帝政)을 세웠다. 이점에선 그의 보나파르티슴(bonapartism)은 프랑스 혁명의 급진(자코벵)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일단정지’였다. 그러나 그의 제정(帝政)은 혁명 전(前)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과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체제적 변동이었다. 나폴레옹 시대는 프랑스 혁명이 제기한 근대적 변혁과제를 법과 제도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 국한해서 바라본다면 보나파르티슴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앞으로 향한) 하나의 구간(區間)이었다. 결국 보나파르티슴에는 ‘일단 정지’와 “앞으로 갓“이 다 있었던 것이다. ‘일단정지‘는 자코벵 급진주의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을 반영한 것이고, ”앞으로 갓“은 근대로 가야할 시대적 대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5. 16 군인들은 물론 쿠데타 방식으로 집권했다. 그리고 그들의 쿠데타는 이승만 시대를 붕괴시킨 4. 19 혁명 이후의 ‘급진적’ 물결에 대해서는 ‘일단정지’였다. 그러나 그들이 집권한 18년 동안 한국은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한’ 일대 “앞으로 갓” 변혁을 거쳤다. 그 변혁을 통해 한국은 근대화 되었다. 이 근대화 변혁을 겪고 나서 한국, 한국인들은 오늘의 발전된 ‘세계 속 대한민국’을 목격하고 있다.

     이 발전에는 근로자들의 노고가 있었다 이점을 평가하는 데 인색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그런 국민대중의 에너지를 담아낸 당시 각계 엘리트들의 리더십과 그 방향선택을 평가하는 데도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박효종 그룹의 현대사 보기는 5. 16이 가진 쿠데타적 집권방식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시작해서 이룩한 근대화 변혁은 엄연한 팩트(fact)임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것뿐이다. 박효종 그룹이 아니더라도 1961~1979 기간의 한국의 사회변동이 가져온 발전의 측면은 가히 ‘혁명적’이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였다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 있었던 멕시코 대선(大選) 때 후보들은 “한국처럼 하겠다”고 공약했다고 한다.

    물론 빛은 그림자도 만든다. 장미 빛 발전 뒤에는 회색 빛 희생도 있다. 특히 유신(維新) 기간일수록 정치적으로 억울한 희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 그림자와 희생에 대해 이제는 ‘햇볕’을 쐬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5. 16 이후 우리 현대사의 근대화 변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울타리 밖으로 나갈수록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누가 밉고 싫다고 해서 그 점을 애써 부인한다 해도 그건 한국 정쟁(政爭)에서는 용처(用處)가 있을지 몰라도 세계적 차원의 학문적 시각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할 것이다. 북한 판(版) '민족민중 사관'이 총체적인 실패로 돌아간 것과 대비해 보면 더욱 그럴 것이다.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