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인트로 지워버린 해군의 전설, 'KILL MARK' 
     
      해군 스스로 자신들의 전설을 지운 꼴이다
    고성혁(회원)    
     
     전쟁기념관은 최고의 안보 교육장

    필자는 가끔 전쟁기념관을 찾는다. 전사자 銘碑(명비)는 각 부대별로 6ㆍ25전쟁과 월남전, 서해교전까지 戰死(전사)한 전몰장병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 전쟁기념관의 회랑에 세겨진 국군 및 경찰 순국 전사자 명비(銘碑)

    최근 전쟁기념관은 내부 공사를 새로 하여 과거보다 진일보한 전시물을 내놓았다. 컴퓨터 화면에 익숙한 시대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입체 영상물도 마련했다. 일요일에 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와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육의 장소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배치받으면 꼭 들르는 곳도 전쟁기념관이다. 외국인들에게도 전쟁기념관은 한국의 첫째 가는 관광명소다.

     


  • 전사자 명비 앞에 가지런히 놓인 헌화

     전쟁기념관의 屋外(옥외) 전시물은 누구에게나 흥미거리다. 國軍이 사용했던 장비와 북한군으로부터 노획한 裝備(장비)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이웅평 대위가 몰고 귀순했던 미그 19機(기)도 국군 팬텀기와 함께 나란히 전시돼 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장비는 그 하나하나에 역사가 깃들어 있다.

    페인트로 지워버린 해군의 전설 KILL-MARK

    전쟁기념관 한 켠엔 헬기전 시장도 있다. 國軍이 사용했던 각종 헬기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는 한 헬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알류트 해상작전 헬리콥터’였다. 이것은 우리 해군의 3대 전설 중 하나를 장식한 기념비적인 헬기다. 첫 번 째 전설은 6ㆍ25전쟁 발발 당일 부산 앞바다에서 북괴군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백두산함’이다. 두 번째는 동해상에서 소련 잠수함을 끝까지 추격한 ‘충무함’이다. 세 번째가 북괴 무장간첩 모선을 격침시킨 알류트 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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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함에서 이륙한 알류트 헬기가 1983년 울릉도 동북방 해상에서 북괴 무장간첩선을 격침
    켰다.
     
    1983년 8월13일 울릉도 東北方(동북방) 해상에서 우리 해군 강원함은 북괴군 간첩 母船(모선)을 발견했다. 대한민국 해군에 발각된 북괴군 간첩모선은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강원함은 간첩 모선보다 속도가 느렸다. 그러나 해군 강원함에는 해상 작전 헬리콥터가 탑재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만든 알류트 헬기다. 간첩 모선을 발견한 강원함은 알류트 헬기를 긴급 발진시켰다. 알류트 헬기는 간첩모선을 보고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불발이었다. 다시 강원함으로 돌아온 알류트 헬기는 무기와 연료를 再주입, 간첩 모선을 추격하여 미사일로 격침시켰다.

    북괴군은 간첩선을 이용한 對南침투를 포기하고 잠수정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그 功勞(공로)로 알류트 헬기에는 훈장과 같은 KILL-MARK가 새겨졌다. 전투기가 敵機(적기)를 격추시키면 조종석 근방에 KILL-MARK라는 격추 마크를 그려 넣는다.

     


  • 필자가 2010년도에 촬영한 알류트 헬기엔 자랑스런 킬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2012년 6월10일, 전쟁기념관을 다시 찾았을 때 해군의 전설은 페인트로 지워져 있었다. 북괴군 武裝(무장) 간첩모선을 격침한 자랑스런 KILL-MARK가 감쪽같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전시물이 교체된 것도 아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안내 표지판엔 헬기에 대한 매우 간단한 설명만 있을 뿐, 戰功(전공) 내력도 없었다. 필자는 전쟁기념관 담당자를 찾았다.


  •  알류트 해상작전 헬기에 그려져 있던 북괴군 간첩모선 격침 킬마크 (kill mark).

     
    “해상 작전헬기에 킬 마크가 왜 지워진건가요?”

    “아 그거요. 작년 5월인가 해군 6전단에서 와서 새로 도색하면서 지워졌나 봅니다.”

    “전쟁기념관에서 도색한 것이 아닌가 보군요?”

    “예. 해군에서 직접와서 도색한 건데요, 그 전에 찍은 사진이 있으니까 비교해 보겠습니다.”

    필자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전쟁기념관에서 관리하다가 지워졌다면 어느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군에서 직접 도색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해군은 스스로 자신들의 전설을 페인트로 지워버린 것이다.

  •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알류트 헬기는 해군의 자랑스런 역사다. 해군 박물관이 생긴다면 간첩모선을 격침시킨 알류트 헬기는 해군이 제일 먼저 전시해야 할 기록물이다. 그러므로 그 관리가 매우 섬세해야 한다. 만약 해군 6전단 담당자가 알류트 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면 페인트로  KILL-MARK를 지우진 않았을 것이다. 페인트로 지울 만큼 단순한 마크가 아니지 않은가? 알류트 헬기 뿐 아니라 모든 전쟁 기록물의 섬세한 관리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