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 포럼/선진화포커스 82호>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을 보며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배 진 영   월간조선 기자(차장대우) 
     
       20대 여성이 죽었다. 박봉의 월급을 받으면서 부모와 동생들을 부양하던, 하루 일을 마친 뒤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젊은 여성이 사이코패스에게 걸려 성폭행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됐다. 그리고 그 시신은 토막이 났다.

       피해 여성은 죽기 전에 성폭행범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112에 신고를 한다. “저, 지금 성폭행 당하고 있거든요”라며 구해달라고 호소하는 그녀에게 신고를 받은 경찰관은 되풀이해서 “거기가 어디냐?”고 묻기만 한다.

       “지동초등학교 좀 지나서 못골놀이터 가는 길 쯤”이라고 장소를 일러줬는데도, 경찰관은 “자세한 위치 모르겠어요?” “누가 그러는 거예요?”라고 묻기만 한다. “빨리요, 빨리요”라고 호소하는 데도 경찰관은 “문은 어떻게 하고 들어갔어요?” “들어갈 데 다시 한 번 만 알려줄래요?”라고 한가하게 묻기만 한다.

       과연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에게 그런 전화를 받았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을까?

       그 다음은 더 충격적이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성폭행범이 방문을 따고 들어왔는지, 공포에 질린 여성이 “잘못했어요, 아저씨, 잘못했어요!”라고 다급하게 소리친다. 성폭행범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악, 악, 살려주세요!”라고 비명을 지르는 데도 112담당 경찰관은 여전히 “여보세요. 주소 다시 한 번 만 알려 주세요”라는 소리만 반복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녀에게 “주소 알려 달라”는 경찰관의 목소리는 얼마나 잔인하게 들렸을까?

       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얘기다. 이 때문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경찰청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너희(경찰)가 그녀를 죽였다”는 힐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피살된 여성과 경찰이 나눈 대화를 담은 녹취록에서, 무엇보다도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절망적인 처지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을 향해 되풀이되는 경찰관의 메마른 대응이다.

       거기에서는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이 입은 경찰 제복의 의미를 망각한 채, ‘영혼 없는 월급쟁이’로 전락한 말단 경찰관리의 관료적 타성(惰性)만이 느껴질 뿐이다.


    ■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사람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문득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을 자극한다” “북한인권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 “북한 주민들에게는 인권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하므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북한을 지원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등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울러 “탈북자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 중국을 자극한다”며 몸을 사리는 사람들의 얼굴도….


  •   사이코패스에게 붙잡혀 성폭행을 당한 뒤, 잠시 빈틈을 타서 경찰에게 필사적으로 구원을 청한 가련한 20대 여성을 향해 “거기 어디냐?”는 물음만 관료적으로 던진 메마른 경찰관과 그런 사람들이 다른 부류일까? 영혼이, 따뜻한 가슴이 없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한 야당의 전·현직 보좌관 모임 회장을 맡은 누군가는 트위터에 “앞으로 탈북자 받지 맙시다”라는 트윗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트위터 자기소개란에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 선한 눈을 가진 소들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존경하는 인물로 예수와 김구 선생을 꼽고 있다. 참 모순적이다.


    ■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함께 울어주는 것’

       탈북자 구출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탤런트 차인표 씨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집 지하실 창문에 끼여 수 시간 동안 공포에 떨며 지하실 밖으로 울려 퍼지지 못하는 울음과 외침에 지쳐가고 있을 때, 마침 골목길 밖에서 이 모습을 본 형이 아주 큰 소리로,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으앙! 하고 울었다. 형이 놀란 나머지 터트린 바로 그 울음소리가, 마치 저 천상의 천사 목소리인 것처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는 마음은 그런 것이다. 지금 북한주민들은 아무리 울어도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지하실을 향해 울고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북한 인권문제를 외치는 것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북한주민들을 대신해 울어주는 것과 같다.

       중국 내 탈북자들을 포함한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잠시 성폭행범의 마수에서 벗어나 “살려 달라”고 외치는 수원의 20대 처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그들은 성폭행범에게 잔인하게 폭행당하고 살해당한 그녀처럼 북한 땅으로 끌려가 사람이 아닌 존재로 취급당하며 끔찍하게 고문당할 것이다. 비참한 시간을 보내다 결국엔 맞아 죽을 것이다.

       그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한중관계나 남북관계에 미칠 부작용을 따진다? 성폭행범으로부터 구해달라고 절규하는 그녀에게 “주소 다시 한 번 만 말씀해 주세요”하는 소리만큼이나 잔인한 소리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참혹하게 죽어간 20대 여성의 구원을 외면한 경찰관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경찰관이나 다름 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외면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