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력’ 아닌 ‘전략’ 부재…첨단기술․분석가 숭배 문제韓美 외교안보팀 ‘한반도는 휴전 중’이라고 전제 안 해
  • 김정일 사망 소식이 발표된 며칠이 지나면서 ‘한미 정보당국은 왜 김정일 사망을 몰랐나’ 하는 질문이 퍼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삼성보다 더 늦은 한미 정보당국’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문제다.

    한미 통일외교팀은 ‘북한과의 대화’를 ‘외교’로 착각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은 뒤 시작된 김정일 시대에 한미 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일반적인 깡패국가’를 대하는 그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미국은 전통적인 ‘당근과 채찍’ 전술을 내세우며, 경수로 건설과 북핵 개발 중단을 맞바꾸려 했고, 한국 정치권은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나섰다가,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가 5년 마다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김정일 정권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녔다.

    이 시기 정치 지도자를 보좌해야 할 외교안보 담당자도 대부분 별 차이가 없었다. 특히 통일외교 책임자들은 북한과의 대화를 ‘정상적인 국가와의 대화’로 착각하는 ‘황당한 태도’를 보였다. 어떤 이는 ‘휴전 중’이라는 걸 망각했다. 결국 10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뒤늦게 금융제재를 포함한 대북제재를 실시했지만, 북한의 큰 형님(중국)에게 ‘WTO 가입’이라는 물꼬를 터준 터라 제재는 의미가 없었다. 북한에게는 중국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통일외교 담당자들은 북한을 분석할 때도 ‘평범한 독재국가’로 생각해 분석했다. 북한이 ‘생존’을 내세워 모든 점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을 속일 것이라는 생각은 안한 것처럼 보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생기기 시작한 ‘제3경제(민간기업)’를 김정남이 이끌었고, 그 김정남이 2000년 일본에서 밀입국하다 발각된 후 ‘쫓겨나’ 마카오에 머무르는 것으로 위장해도, 그걸 위장이라고 의심하기 보다는 김정일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을 하다 쫓겨났다는 식의 해석을 내놨다.

    마카오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가 김정일의 팬이고, 김정일 돈세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 김정남의 추종세력들이 39호실 산하 기관들의 주축이라는 점, 미얀마와 북한 간의 관계, ‘스탄’국가와 북한 간의 관계 등은 간과했다. 국제금융전산망이나 무역 등 ‘서류상  돈 거래’를 포착하지 못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韓美 외교안보 담당자들은 북한이 이란, 헤즈볼라, 시리아 등과 국제법으로 금지된 무기와 기술을 마음껏 거래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그걸 믿으려 들지 않았다. ‘설마 북한이 미국 등 세계 각국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러겠느냐’는 생각이 문제였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나라다.

    韓美 정보기관의 중대한 약점

    한미 정보기관에는 공통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기술 지상주의’와 ‘내가 모든 걸 다 안다’는 태도다. 미국 정보기관은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뒤 서로 ‘밥그릇 싸움’이나 벌이던 수십 개의 정보기관들이 그나마 태도를 고쳤다. 하지만 ‘미국이 모르면 세계가 모른다’라는 태도는 아직 없애지 못했다. 이런 걸 그대로 배운 게 한국 정보기관이다.

    한국 정보기관들은 대북 정보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면서도 이걸 기술에 의존해 얻으려고 한다. 이들의 ‘롤 모델’은 미국 정보기관이다. 한국 정보기관들은 미국이 가진 첩보위성, 감청시설, 정찰기, 고감도 통신시설 등을 부러워하면서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고 외친다. 반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은 빼먹는다. 바로 ‘인간정보(HUMINT)’와 ‘위협평가(Threat Assessment)’다.

    ‘인간정보’의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공작 대상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위험성도 있지만 성공할 경우에는 가장 정확한데다 수치로는 파악할 수 없는 ‘정성적 정보’까지도 얻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영국, 러시아, 중국 기관이 이 부분에 강하다.

    미국은 한국에서의 ‘휴민트’ 능력 하나만은 무척 강하다. 미국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까지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재벌가 며느리가 언제 어디서 뭘 쇼핑했다는 것까지 파악할 정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제 발로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를 찾아가 미주알고주알 풀어놓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이 제2공화국 때부터 계속 이어지다 보니 미국 정보기관은 한국을 대북정보수집의 ‘전진기지’이자 ‘믿음직한 동맹’이라기보다 ‘만만한 친구(?)’ 정도로 취급한다. 미국이 한국에서의 ‘권력 놀음’에 취하면서 대북정보수집능력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한국 정보기관의 ‘수장’과 ‘이용자’들은 이런 미국 정보기관이 부러운지 ‘귀중한 정보자산(정보요원)’들을 여의도, 광화문, 세종로 주변으로 내몰아 시중에서 떠도는 루머나 기자들에게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아 오라고 다그친다.

    반면 대중국 방첩, 대북 방첩, 해외 정보수집에 투입하는 인원과 자금은 국내 정치정보 수집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보기관의 해외 리포트가 KOTRA와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해외 정보, 대북 정보 수집에 필요한 자금지원에는 인색하다.

    정보기관 ‘수뇌부’와 ‘이용자’들은 ‘위협 평가’에 대한 개념도 희박해 보인다. 2009년부터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DDoS 공격, 악성코드 감염, 개인정보 유출 등 사이버 위협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북한의 저강도 위협,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태 등이 일어났을 때마다 늘 하는 게 ‘사후대책 마련’과 ‘향후 개선’이다. 사전에 위협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일을 정보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기본 중의 기본’도 모른다.

    연 매출 2,000억 달러의 삼성 그룹이 몰랐다면 더 큰 문제

    19일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이 정부보다 김정일의 사망을 먼저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20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는 "어떻게 국가기관이 일개 기업만도 못하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언론과 시민들은 이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은 ‘일개 기업’이 아니다. 30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일종의 ‘요원’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삼성 그룹은 세계 200여 나라의 각종 산업에서 영업을 하며 연간 2,000억 달러 넘게 벌어들인다.

    삼성 그룹은 금융은 로스차일드와 협력하고 있고, 화학과 유화는 영국 BP, 프랑스 토탈과, 소재는 미국 다우코닝과 협력하고 있다. 물론 중국에서도 많은 직원이 활동 중이다. 1990년대 후반 이미 세계 4대 지역본사(HQ)를 설치한 뒤 24시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수 년 전부터 '미래'만을 집중 연구하는 부서도 만들었다. 우리나라 외교안보팀 중 이런 규모, 이런 사고방식으로 만든 조직이 있나.

    물론 삼성은 자신들이 김정일 사망을 먼저 알지 못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즉 삼성 그룹 정도면 김정일 사망 소식은 이미 알고 있어야 정상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그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면 그게 더 문제다.

    삼성 그룹이 정보기관보다 김정일 사망을 먼저 알았다고 국회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점은 정보기관과 정치권에게는 ‘거울’ 같은 문제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를 한 번 되돌아보자. 정보기관이 삼성 그룹보다 늦다고 욕하기 전에 정치권과 국가 수뇌부가 그들에게 무슨 일을 시켰는지 따지는 게 먼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