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안 끝까지 ‘NO’야권 통합 앞두고 대권·당권 위해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 불가론을 끝까지 고수한 민주당 의원총회가 있었던 지난 16일 오후.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장사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근래 보기 힘든 침통한 표정이었다. 죄라도 지은 듯 했다.

    경기지사 시절부터 강경한 ‘통상론자’였던 손 대표다. 그러나 이날 민주당의 한미FTA ‘브레이크’는 손 대표가 주도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목소리가 5대 5로 팽팽한 상황이었지만 손 대표가 직접 '당론 고수' 결정을 내리면서 강경파의 손을 들어줬다.

    의총에 참석한 온건파 의원들도 “정동영 최고위원이 'FTA 통과되면 야권통합은 없다'며 극렬 반대했지만, 손 대표가 이를 거들지 않았으면 이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 결국 이번 결정은 모두 손 대표가 져야할 책임”이라고 했다.

    자존심 버린 손학규…대권 때문에?

  • ▲ 16일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손학규 대표가 회의 자료를 보며 고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 16일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손학규 대표가 회의 자료를 보며 고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한미 FTA 민주당 협상파를 주도하고 있는 김성곤 의원은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미FTA 때문에 야권통합의 파열음이 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지도부의 걱정”이라고 했다.

    'FTA 반대'를 강하게 주장해야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주도권을 잡는 사람이 민주노동당과 좌파 단체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야권 대권 후보로 나갈 수 있다.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민주당이 FTA 문제에서 타협하는 순간 야권 연대는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손 대표의 말에 ISD 재협상안을 내놓고, 미 정부도 이를 수용했지만, 민주당은 애초부터 협상을 고려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통상론자였던 손 대표의 변심도 여기서 비롯된다. 가뜩이나 한나라당에서 넘어온 ‘굴러들어온 돌’ 취급 받는 그다. 국회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고 한미 FTA 비준안이 강행처리된다고 해도 자신의 ‘선명성’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냐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을 감안한 듯 민주당은 오히려 17일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안 강행처리로 인해 국회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책임은 한나라당에 있다"고 엄포를 놨다.

    손 대표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기치를 높이자 덩달아 존재감 확인을 위해 다른 대권 주자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더 강경한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가자"고 했다. 정세균 최고위원도 FTA에 대한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협상파 한 의원은 “중진 의원들 중에는 협상에 무게를 두는 사람이 많지만, 공천 작업을 앞두고 쉽게 말을 꺼낼 수 없다. 손 대표 역시 구도가 이렇게 된 이상 그 말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