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주민투표 결국 개봉도 못해…‘완패’시장직 사퇴 임박, “왜 이렇게 됐나”
  • “애초에 질 수 밖에 없는 승부였다.”

    서울시 주민투표가 시행된 24일 오후 4시 투표율이 나온 시점부터 서울시청 곳곳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다. 주민투표 개표 조건인 33.3% 달성이 힘들 것으로 보이면서 복도마다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의 불만 어린 투의 ‘패배 원인’ 분석이었다.

    지고 나서 쏟아내는 변명이라고 하기에는 공감대가 컸다. 질 것을 알면서도 승부를 건 오세훈 서울시장을 원망하는 말들에 서울시청은 말 그대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잘 되게 하는 일은 어려워도 못 되게 하는 일은 쉽다’는 말을 여실히 증명한 하루였다. 주민투표 자체가 성립이 쉽지 않은데, 반대 세력까지 있었으니 애당초 성공할 가능성은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측근이 내놓은 나름대로의 분석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를 막판 뒤집기로 이긴 기적에서 얻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때문이라는 쓴소리도 했다.

  • ▲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가진 뒤 퇴장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주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기자회견을 가진 뒤 퇴장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주민투표, 그 자체로 성립률은 낮아

    먼저 주민투표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자체의 정책을 묻는 것이 있고, 둘째는 지자체장의 신임을 묻는 경우다.

    정책을 묻는 경우는 그나마 투표 성립률이 높다.

    주민투표법 시행 1년 만인 2005년 7월에 실시된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 관련 주민투표는 가장 성공적인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투표에서는 제주도를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하는 안과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는 안을 놓고 투표가 실시됐다. 제주도민 입장에서는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승격되는 기점이었기 때문에 찬성표는 물론 투표율(36.7%)도 높았었다.

    하지만 지자체장의 신임을 묻는 경우는 정반대였다. 정치적 이념을 묻는다는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이 투표장을 한가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이미 투표로 뽑은 단체장을 다시 끌어내린다는 개념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감’은 투표함을 아예 개봉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광역화장장 문제로 주민투표에 부쳐진 경기도 하남시장의 경우 소도시였음에도 불구, 31.1%로 투표성립이 되지 않았다. 시흥시장 주민소환은 아예 소환 청구를 위한 서명인 수도 채우지 못했다.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한 지난 2009년 주민투표의 투표율은 11.0%에 머물렀다.

    ◇ 서울 주민투표 실패 원인은?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의 가장 큰 실패 원인도 정책 선거에서 정치 선거로 변질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애초에 무상급식이라는 지원 대상을 묻는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신임을 묻는 선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이념과 성향을 묻는 투표가 되면서 유권자들은 투표소 가기를 꺼려하게 됐다.

    오 시장이 지난 21일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말하면서 ‘투표 참여=오시장 재신임’이란 공식이 형성됐다. 사실 이 같은 수순은 지난 1월 오 시장이 서울시의회 불출석 선언과 함께 등을 지고 “시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고 싶다”고 말하면서부터 예고됐었다.

    덕분에 민주당은 “이번에 주민투표를 하지 않으면 서울시장을 바꿀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주도권을 잡게 됐고, 서울시는 한나라당의 미적지근한 지원만 원망하며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앞서 거론한 서울시청 직원들의 말처럼 그냥 둬도 쉽지 않은 승부였는데, ‘시장직’을 던지고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오히려 더 고춧가루를 뿌렸다는 말이다.

    결국 오 시장은 주민투표의 본질을 뛰어넘어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접근했다가 스스로 ‘침몰’ 당한 셈이다.

  • ▲ 서울시 주민투표가 시행된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현충원을 참배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 뉴데일리
    ▲ 서울시 주민투표가 시행된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현충원을 참배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 뉴데일리

    ◇ 오세훈, 정말 실패할 것 몰랐을까?

    뒤돌아보면 이번 주민투표의 최대 분수령은 지난 21일 오 시장이 ‘시장직’을 던진 날이었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지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날 모든 언론은 대서특필했지만,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다. 각종 패러디물이 난무했고, 대세는 기울어져갔다.

    당시만 해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중도층들은 이 때부터 대세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오세훈은 아직도 지난 2010년 6월 3일 아침 햇살에 젖어있었다.”

    지나고 나서의 평가지만, 결국은 좌충수였던 시장직을 걸었던 선택을 오 시장이 하게 된 이유는 ‘절박함’보다는 ‘자신감’이었다.

    오 시장은 투표 전날인 23일 밤까지도 "이번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부동층이 분명 투표소에 나와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나와 주십시오”가 아니라 “나와 줄 것이다”였다. 중요한 어투의 차이다.

    시장직을 던지던 날에도 “저를 도와주십시오”가 아니라 “나라를 구하는데 힘을 보태주십시오”였다. ‘대선 불출마’와 ‘시장직 사퇴’라는 두 번에 걸친 ‘이벤트’를 벌이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유권자들이 오 시장을 위해 투표장으로 향해줄 것으로 자신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태도였다.

    이런 태도는 결국 자신의 정치생명을 ‘올인’하면서도 효과는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