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우경보가 호우특보로 바뀔 만큼 장대비가 쏟아진다.

    “국회도서관 가는데 주차장은 어디 있나요?”
    국회의사당 정문을 들어서 차창을 내리고 경비경찰관에게 물었다.

    “일반인 주차장은 여기 없습니다. 아무데나 주차하시면 견인됩니다.”
    “국회도서관에 지하 주차장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차를 돌리세요. 정문을 나가서 한강둔치 주차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한강 둔치라? 가본 적 있다. 의사당 건물 뒤편 둔치에 주차시키고 벚꽃구경 했었지.
    다른 차들을 따라가 봤다. 둔치로 나가는 길이 어디더라?

    까만 고급차들이 길가에 주차하는 옆을 보니 국회도서관 현관이 보인다.
    잠깐 주차하고 들어가서 볼일 보고 나오는 모양이다. 두 줄로 서는 차량 행렬 틈에 끼어 차를 세웠다.
    도서관 지하1층에서 모 국회의원의 출판 기념회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축하인사를 나누고 책을 받은 후 되돌아 나왔다.
    차를 끌어갔을까? 차는 그대로 있다. 다른 차들이 잇따라 차를 세우고 있다.
    차를 몰고 폭우 속을 달려 넓은 구내를 빠져나와 점심 약속 장소로 갔다.

    “아니, 국회도서관에 일반 시민을 위한 주차장이 없다니 놀라운데...”
    “그걸 이제 알았어? 버스나 택시를 타야지. 국민은 차타고 못 들어가는 데야.”

    그럼 어쩐다? 2시간 뒤, 이번엔 의원회관에서 다른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치인들의 출판 기념회가 자주 열린다.
    다행히 집이 여의도인지라 차를 집에 세워두고 택시를 타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렸다.

    “가까운데 뭘 그래. 아까처럼 적당한 곳에 잠깐 세우면 되잖아. 비도 오는데,” 

    의원회관엔 일반용 주차장이 있을까? 차를 몰고 다시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가 의원회관 앞으로 갔다.
    길 양쪽에 차들이 꽉 차 있다. 고급승용차들은 현관 정문 앞까지 올라가 높은 분들을 내려주고 길가에 주차한다. 좀 더 나아가니 오른쪽에 주차장이 보인다.

    “안됩니다. 나가십시오. 비(秘)표 없는 차들은 둔치로 가십시오.”
    유니폼 입은 청년이 손으로 차를 돌리라는 신호를 계속하며 차를 두드린다.

    비표? 국회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들 비표를 갖고 다니는 모양이다.

    "의원회관에도 주차장이 없다구요? 참 여러가지로 웃기는 국회네요.”
    뒤를 따라온 차에서 아주머니가 주차장 관리원에게 목청을 높인다.

    “저도 왜 그런지 모릅니다. 어서 차를 돌리세요, 막히잖아요.” 

    의사당 구내를 나와 빙빙 돌아서 한강 둔치로 내려가 주차했다.
    꽉 찬 주차장은 호우에 물바다, 차를 내려서 걷다가 구두속 양말까지 젖어버렸다.
    의원회관까지 한참 걸었다. 로비에서 수속을 마치고 출판기념회장에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그야말로 장대비다. 10분쯤 기다려도 굵은 빗줄기는 멈출 것 같지 않다.
    그냥 걸었다. 우산 속까지 빗물이 줄줄 떨어진다.
    의사당 본관을 돌아 윤중제로 들어서니 40년 넘은 벚꽃나무들이 울창하다.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1㎞ 이상 왕복했을까. 물에 빠진 생쥐 꼴, 바지는 허벅지까지 젖었고 윗도리도 젖었다. 구두 속에서 빗물이 찌걱거린다. 우산을 쓰나마나한 집중호우다. 
    “당을 위해 10년 넘게 봉사해온 xxx후보는 일편단심 국민만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습니다.”
    때마침 지나치는 승합차 스피커가 소리소리 친다. 행인도 없는 길에 무슨 선거운동?
    아하, 요즘 당대표 뽑는다지? 맨땅에 냇물이 콸콸 흘러넘치는 둔치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 올랐다.
    그 넓은 땅에 국민용 지하주차장 하나 없는 국회, 국민 대표들이 독차지한 땅이 너무 넓어 보인다. 
    국민은 차타고 들어가선 안 되는 국민의 전당. 국회 한번 다녀오기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