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20 頂上회의와 서울올림픽 비교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벽을 넘어서'란 구호와 애매모호한 '위기를 넘어서 다함께 성장'이란 구호.

    趙甲濟   
     
     폐막된 제5차 20개국(G20) 頂上회의의 주제는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Shared Growth Beyond Crisis)'이었다. Shared Growth를 '다 함께 성장'으로 번역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성장의 과실을 나눠 먹자'는 공짜 심리가 엿보이는 구호이다. 읽는 이들의 마음에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는, 그렇다고 뚜렷한 개념을 심는 것도 아닌, 철학이 없는 拙作(졸작) 구호였다. 세련된 영어도 아니었다. '지식경제부'(Ministry of Knowledge Economy)라는 황당한 부처 이름을 만들어낸 李明博 정부의 수준 낮은 言語능력을 상징하는 구호였다.
     
     인간이나 조직(국가 포함)의 궁극적인 格(격)과 質(질)은 言語능력이다. 言語능력의 핵심은 作名능력이다. 정책의 이름, 구호, 부서 이름을 만들어내는 수준이다. 이런 造語(조어)능력은 한글에 기대할 순 없다. 漢字만이 영어와 겨룰 만한 造語능력을 갖고 있다. 造語능력이 있어야 창조와 생산과 건설과 확대와 成長이 가능하다.
     
     잘 만들어진 구호는 역사를 움직인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申翼熙(신익희)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자유당의 李承晩 대통령에 도전했을 때의 구호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정치구호 가운데 지금껏 최고작품으로 꼽힌다.
     
     기자는 서울올림픽 개회식의 구호 – ‘벽을 넘어서’, 역시 1980년대 우리의 耳目(이목)을 집중시켰던 서울 올림픽 구호 –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70년대의 –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 그리고 1990년대를 대표하는 朝鮮日報의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구호, 1960년대의 ‘조국근대화’ ‘민족중흥’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를, 시대정신을 담은 名文으로 꼽는다.
     
     이들 구호는 구호로만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을 奮起(분기)시켜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역사를 굴러가게 만들었다. 인간의 실천을 유도한 구호들인 것이다. 이들 名文 구호는 예언적인 면도 갖추고 있다. 서울 올림픽은 세계를 서울로 불러들여 서울을 세계로 알렸다. 이 올림픽은 또 인종과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서 동서화합을 달성했고 그 1년 뒤엔 드디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한 계기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과 동구권 붕괴의 동력원이었던 시위 현장에서 데모송으로 울려퍼진 노래가 서울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였다. 이 노래 가사 가운데 있는 ‘브레이킹 다운 더 월’(Breaking down the wall)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그 현장에서 울려퍼졌다. 코리아나 그룹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동양인이 부른 노래 가운데서 가장 많이 팔린 노래가 된 ‘손에 손 잡고’(Hand in Hand)는 1990년 4월 체코 무용단이 金日成 생일에 맞추어 평양에 가서 공연할 때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었고, 김일성은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이 주제가는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주제가를 작곡했던 조지 모로데가 작곡하고 토머스 R 휘트록이 작사했다. 국내에선 주제가는 한국인 작곡가가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으나 朴世直(박세직) 조직위원장이 ‘우리 취향이 아니라 손님 취향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세계 一流 작곡, 작사가를 고른 것이 적중했다.
     
     원래 서울 올림픽의 주제는 ‘화합과 전진’이었다. 좀 딱딱한 이 개념을 개폐획식의 기본철학으로 구체화시키면서 아주 역동적인 ‘벽을 넘어서’란 말로 풀어놓은 이는 개폐회식 상임위원 李御寧(이어령) 교수였다.
     
     역대 올림픽 개회식 가운데서도 最高로 꼽히는 서울올림픽의 개회식은 ‘벽을 넘어서’란 분명한 주제의식으로써 모든 공연과 상징과 동작을 일관된 하나의 흐름으로 묶었기 때문에 그토록 힘찼고 예언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식과 철학이 들어간 구호는 역사의 動力(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문장력은 어떤 조직의 정신력과 교양, 그리고 총체적인 실력을 나타낼 때가 많다. 서울올림픽 이후에 한국에서 있었던 큰 행사, 예컨대 1993년의 대전엑스포나 2000년 1월1일 0시의 광화문 축제는 추억이 될 만한 구호도 名文도 그리고 이미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림픽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명문이 없었기에 명작도 없었던 것인가.
     
     李御寧 교수는 ‘벽을 넘어서’란 명문을 만들어낸 서울올림픽 준비과정에 대해서 이런 감회를 밝힌 적이 있다.
     
     “단군 이래로 춤추는 사람, 철학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문학하는 사람, 음악인 등등이 이렇게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일한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 인재를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인이 이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은 서로의 능력을 보태준 것이 아니라 서로 깎아내렸기 때문이지요. 부정적 思考(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논리는 질서정연한데, 된다는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래서 안된다는 사람이 지식인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안된다는 쪽보다는 좀 구름잡는 얘기 같아도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지요”
     
     써놓고 보니 이 말 또한 名文이다. 서울올림픽 성공의 한 요인은 군사문화를 대표하는 朴世直 조직위원장(작고. 육군소장 출신)의 추진력과 文民을 대표하는 지식인 李御寧 교수의 만남과 협력이다. 朴世直 위원장은 부하직원들의 관료주의나 무사안일, 그리고 반발을 눌러가면서 李御寧 교수의 천재적이고 때론 기발한 상상력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지식인의 꿈과 군인의 힘이 빚어낸 文武의 합작품이 바로 서울올림픽이었던 것이다.
     
     이 성공비결은 많은 암시와 예언을 담고 있다. 理와 氣, 武와 文, 정신과 육체, 명분과 실제 같은 상반된 요소를 어떻게 통합하고 조화시키느냐, 여기에 우리 사회의 발전과 퇴보가 달려 있다는 암시이다.
     
     G20 頂上 회의를 홍보하기 위하여 만든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이 회의의 성과는 서울올림픽을 능가할 것이다"고 하였다. 말을 해도 참 정나미 떨어지게 못된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는 회의일 뿐이다. 서울올림픽은 세계사를 움직였지만 G20은 회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