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북 활동가 사찰로 시작한 ‘사찰 논란’

    지난 6월 29일 MBC 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라는 꼭지를 내보냈다. 총리실 산하에 공직자의 기강확립, 공직자 사기진작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단지 ‘쥐코 동영상(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 의료제도를 비판한 ’식코‘의 포맷을 빌려 이명박 정부를 비난한 패러디 영상)’을 일 평균 수십 명이 방문하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까지 조회해 해당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방송이 나가자 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그런데 사찰 대상자를 인터뷰한 영상에서 그의 서재에 있는 책들이 모자이크 처리된 게 다시 논란이 됐다. 가려진 책들 중에는 ‘김일성과 민주항쟁’ ‘혁명의 연구’ ‘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 등 친북좌파적 서적들이 있었던 게 드러났다. 사찰 대상자는 실제 과거 좌파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운동가 출신이었다. 이로써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실은 친북 활동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 사법당국에 제보한 것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곧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한나라당 소속인 남경필 의원 부인을 사찰한 사실이 밝혀지고 이어 정태근 의원과 정두언 의원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도 사찰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후 이 사건은 단순한 사회위협세력에 대한 정보수집이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정관계에 떠도는 ‘說’

    이 ‘민간사찰’ 문제에 대해 정관계에서는 다양한 ‘설(說)’이 나돌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남경필-정태근-정두언 의원 간의 갈등설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권력 집행의 이니셔티브를 두고 갈등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 소장파 의원들과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그의 측근들(일명 영포회)이 서로 권력을 놓고 갈등하다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 간의 갈등이 심했던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국무차장은 넓은 업무 범위와 치밀한 일처리 능력으로 국무총리실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 윤리 점검 및 기강확립, 사기진작 등을 위한 곳으로 국무차장을 보좌하게 돼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의 활동 감시와 이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기에 수사와 감시에 능한 수사관 인력들이 파견 배치돼 있다. 이런 능력을 이상득 의원과 그의 측근이기도 한 박영준 차장 등 일명 ‘영포회’가 활용했다는 게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시작돼 일부 언론에 알려진 ‘설’의 핵심이다.

    하지만 역시 ‘설’은 ‘설’일 뿐일까.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것은 ‘불법사찰이 있었으나 하드디스크 등 관련 자료가 모두 폐기되어 누가 시켰는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것뿐이다. 언론 또한 그 이상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확실한 ‘사실’과 ‘근거’가 나오지 않은 탓에 ‘민간인 사찰’에 대한 논란은 더 파격적인 정치적 이슈가 나오기 전까지는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권력과 사찰

    언론과 정관계가 이번 일을 주목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정치사와 역사가 거의 같은 ‘사찰’ 문제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찰 조직은 과거 유명했던 ‘사직동팀’이다. ‘사직동팀’은 공식적으로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 고위 공직자 윤리점검 및 비위 수사를 담당하며 필요하면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수사하던 곳으로 1972년부터 28년 동안 ‘무소불위’의 수사기관처럼 여겨졌다. ‘사직동팀’은 2000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명령으로 공식 해체했다.

    이 ‘사직동팀’ 해체를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정보기관과 사법당국의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과 사찰 활동을 대폭 축소시켰다. 또한 ‘인권’을 내세워 이들이 친북 세력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예방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한을 뒀다. 지난 정부들은 이런 식으로 제도를 바꾼 후 본격적인 ‘대한민국 정통성 해체’ 작업에 돌입했었다.

    처음에는 사직동팀의 해체와 정보기관-사법당국의 ‘사찰 금지’로 국민들의 생활이 한결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서서히 나타났다. 친북 세력이 사회 전면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곳곳에서 비리와 불법이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허물기 위해 떼로 모인 시위대가 오히려 경찰의 보호를 받는가 하면 ‘바다이야기’ 등의 사행성 오락실, 각종 불법 성매매가 판을 쳐도, 조직폭력배가 오히려 경찰과 검찰을 고소고발해도 정치권은 수수방관했다. 여기다 ‘인권’ 규정이 인사고과에까지 반영되다보니 정보기관과 사법당국도 ‘제보’나 ‘첩보’만으로는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면서 국민들이 지쳐가고 분노하자 새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치안 질서 확립’을 목표로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촛불난동’부터 시작된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이때마다 사법당국과 정보기관에 ‘제 역할’을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갖 제도와 법률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한한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민간인 사찰’ 논란의 핵심

    현재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찰’ 논란의 핵심을 ‘권력’이라는 식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보는 논란의 핵심은 바로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 당사자들에 대한 비위사실을 감찰하고 기강을 바로 잡는 게 임무다. 만약 공직자들의 비위사실이 드러나면 이를 사법당국에 알려 처벌받도록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형식상으로만 사법당국에 처리를 요청했다는 게 문제다. 선출직 공무원인 국회의원에 대한 감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 가족들에 대한 사찰 의혹 또한 ‘민간인’에 대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법당국의 수사 이전에 증거를 모두 폐기했다는 점이다.

    이런 행동은 결국 ‘법질서 확립’을 목표로 내세웠던 현 정권에게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안기게 된다. 유권자들이 청와대와 여당이 과연 ‘사회정의’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점 또한 향후 큰 부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