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번째 Lucy 이야기 ④  

     「그런데 말씀입니다.」
    하고 말을 이었던 사내가 문득 머리를 들고 김태수를 보았다.
    「선생님, 계속 할까요?」

    김태수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럼요. 계속 하세요.」

    손까지 들어 보인 김태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번 들어나 보십시다.」
    「좀 흥미가 있습니다.」
    따라 웃은 사내가 제 앞에 놓인 종이를 들고 읽는다.
    「이승만 대통령하고도 관계가 있거든요.」
    「아니, 뭐라구요?」
    「들어보십시오.」
    하고는 사내가 읽기 시작했다.

    「1954년 8월 27일, 한국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친일파 청산위원회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그 이유는,」
    호흡을 고른 사내가 다시 읽는다.
    「일본 육사 출신 대위로 만주에서 헌병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 수십명을 체포, 처형시킨 김만기를 충북 청원 경찰서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김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김만기는 조부 이름인 것이다. 조부가 그냥 경찰서장이었던 것으로만 알았던 김태수다.

    그때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그리고는 사내가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가 조금 굵어졌다.
    이승만 대통령 목소리를 내려는 것 같다.

    「나는 개혁운동을 하다가 대한제국 감옥서에 5년 7개월 동안 갇혀있는 동안 스스로 약속을 한 것이 있소. 그것은 제 자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는 한 두루 포용하고 용서하여 조선인이 모두 함께 나아가겠다는 것이오.」

    김태수는 숨을 죽였다. 그러나 찌푸려진 이맛살은 펴지지 않는다.
    이승만의 변명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때 사내가 다시 한마디씩 힘주어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는다.
    당시의 신문을 복사해 온 것이다.
    「내가 경찰서장에 임명한 김만기는 김재석의 아들이오. 김재석은 내가 계몽운동을 할 적에 여러 번 내 목숨을 구해준 경호원이었습니다. 그 김재석이 죽으면서 아들 김만기를 나에게 부탁했습니다.」

    머리를 든 사내가 김태수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읽는다.
    「김만기가 세 살 때 김재석이 죽었습니다. 나는 김재석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된 김만기는 대한민국의 훌륭한 경찰서장이 되어 제 아비의 못다한 몫까지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종이를 내려놓은 사내가 정색한 얼굴로 김태수를 보았다.
    「김선생님의 조부께서는 이승만 대통령과 그런 인연이 있으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신 겁니까?」

    김태수가 머리만 저었다. 조부는 아버지한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가 1954년이라면 아버지는 9살 쯤 되었을테니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때 사내가 김태수에게 물었다.
    「증조부께서는 김재석이란 분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경호원이셨다고 이렇게 기록에도 나와 있군요. 증조부가 그런 분이셨다는 것도 모르고 계셨군요?」

    김태수가 머리만 끄덕이자 사내는 제 앞에 놓인 모든 서류를 봉투에 담더니 내밀었다.
    「가져 가셔서 다시 보시지요. 전 김선생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줄 알고 가져왔습니다만.」

    김태수의 반응이 예상 밖인지 사내가 입맛을 다시더니 일어섰다.
    「그럼 다시 연락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