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에서는 ‘연천 530GP 피격사건 진상규명 촉구 국민협의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가족을 비롯해 국가사랑모임, 자유시민연대 등 33개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 軍 “김 일병, 선임병들에 앙심 품고 총기난사”

    연천 530GP 피격사건은 지난 2005년 6월 19일 오전 2시 30분 경 연천 제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530GP에서 김동민 일병이 수류탄과 K-1 소총 44발을 난사해 총 8명을 살해하고 4명은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군당국은 “김 일병이 일부 선임병들의 욕설 및 질책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김 일병이 총기를 난사한 것이 아니라 북한군의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정황을 살펴봤을 때 의문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유족 “온갖 의문 투성…도무지 믿을 수 없다”

    유가족들은 “19일 새벽 1시경 소대원 14명은 노루골 차단작전 지역(GP)에서 작전을 마치고 복귀중 GP에서 약 900m 지점에서 북한군의 RPG7 로켓포 7발의 기습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GP옥상에도 동일한 로켓포 2발의 공격을 받아 옥상 초소 경계근무자 2명도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은 먼저 사건발생일인 18일 밤부터 19일까지 ‘주-야간 차단작전’이 펼쳐진 것에 주목했다. “당시 군 수사발표 내용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SBS 뉴스추적에서 사건 발생 당일 제 28사단과 최전방부대는 주야간 차단작전이 실시된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군 수사발표대로 내무실 취침 중 발생한 사고라면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을 것을 사고 발생 직후 전투복과 엑스레이 (X-ray)를 소각해 증거를 인멸했다”면서 “또 반납된 총기도 22정이 부족하다. 특히, 차단작전시만 휴대하는 K3(기관총)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 ▲ 8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에서는 ‘연천 530GP 피격사건 진상규명 촉구 국민협의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 뉴데일리
    ▲ 8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에서는 ‘연천 530GP 피격사건 진상규명 촉구 국민협의회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 뉴데일리

    유가족들은 군이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에 관련자 처벌 대신 25명의 생존소대원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에게 조기전역 및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것도 의문이다. 특히, 김 일병을 괴롭혔다는 7명의 질책사병에게도 이 같은 특혜가 주어졌다. 유가족들은 “당시 2명이 생존대원은 ‘부끄러운 국가유공자는 싫다’면서 거부했는데 무엇이 부끄러운지 밝혀내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 수류탄 쇠구슬은 아군, 사다리꼴은?

    유가족이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은 내무반 ‘수류탄’ 폭발부문이다. 이들은 “부상자 몸에서 나온 실물 파편이 사다리꼴 형상”이라며 “아군 수류탄 파편은 쇠구슬로 돼 있다고 한민구 대장이 국방위에 보고도 했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파편 형상이 다른 것은 미상화기 파편을 의미, 내무반 사고가 아님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군은 박의원 상병이 수류탄 폭발로 인한 복부파열 개방창에 의해 현장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으나 전 국방부 장관이었던 정래혁, 윤성민 씨 등 군 장성들은 열화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밝혔다”면서 “이건욱 상병도 사고 당시 우측 어깨 및 좌측 대퇴부 파편창으로 검안했다가 총상으로 둔갑시켰다”고 덧붙였다.

    ◇ “김 일병, 충분히 덮어쓸 수 있다”

    유가족들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김동민 일병에 대해 ‘덮어 쓴’ 것이라 믿고 있다.
    유가족은 “김 일병의 범행총기에는 잠정지문도 없고 범행을 목격한 자가 없다”면서 “사건 당시 전파내용에는 ‘미상화기 9발 피격, 아 530GP 북한인원으로 추정되는 미상화기 9발 피격, 5명 사망’ 등의 부대일지 내용과 ‘야간 차단작전중 사고였다’‘시신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피를 닦아가며 혼자 시신을 배치했다’는 진술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두하 유족회 대표는 “당시 굉음이 몇 차례 울린 뒤, 정전됐다는 증언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군이 사고발생 지역으로 꼽은 내무실 천장에 달린 선풍기나 형광등은 멀쩡했다”면서 “동료들이 곁에서 죽어가는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군 명령을 어길 군인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족들은 “군이 530GP의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면서 “집권층이 깊숙이 개입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2005년 6월 17일에는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이 김정일은 면담했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연천530GP피격사건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는 현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6월 25일을 전후로 감사원에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국민감사를 청구하기 위해서다. 청와대와 국회의장 앞으로도 진정서를 보낼 예정이다.

    참여단체로는 다음과 같다. 국가사랑모임, 국제외교안보포럼, 대한민국재향경우회,대한상이군경회,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대한불교조계종방생법회, 올바른교육을위한시민연대, 대한참전단체연합회, 육해공영관장교연합회, 대한민국ROTC구국연합, 자유지성300인회, 철우회, 통일안보중앙협의회,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나라사랑시민연대, 실향민중앙협의회, 국가중흥회, 시스템크럽, 한국대학법인연합회, 한국미래포럼, 한국유격군총연합회, 철도참전유공자회, 전국철도노우회, 6.25참전태극단동지회, 자유시민연대, 실향민중앙회,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올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