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외교관으로 평생을 보냈다. 유달리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근무지에서 여러 외국어를 접하면서 언어의 생성,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나 문화의 형성과정 등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 ▲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말’ ⓒ 뉴데일리
    ▲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말’ ⓒ 뉴데일리

    특히 오랜 일본생활을 통해 일본어는 더욱 그랬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홀로 꾸준히 연구와 탐색의 나날을 보냈다. 추리작가의 심정으로 ‘일본말 속에 감추어진 한국말’을 하나하나 캐내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영판 닮았다. 한국어는 한자어, 고유어, 외래어 등으로 구성된다. 일본어도 한어(漢語), 와고(和語), 외래어로 되어 있다.
    와고(和語)는 고유의 일본어라는 뜻이다.
    일본어의 어원을 밝힌다는 것은 결국 '와고'의 훈독(訓讀)이 왜 그렇게 읽혀지는가를 밝히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물(生物)은 음독(音讀)으로 하면 ‘세이부츠(せいぶつ)’, 훈독하면 ‘나마모노(なまもの)’가 된다. 그런데 뜻이 서로 달라진다.
    음독의 生物은 살아 있는 '생물'을 뜻하는 한자어가 되고, 훈독의 生物은 '날 것'을 뜻하는 와고가 된다.
    와고의 어원이 밝혀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섬-島(しま), 밭-畑(ばたけ), 절-寺(てら), 마을-村(むら) 등 주로 구상어(具象語) 중에서 얼마가 한국어에서 유입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와고의 한자가 굳이 그렇게 훈독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과 근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연과 근거를 밝혀내는 것이 일본어 어원 찾기의 출발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고대 한일 간에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빈번한 교류가 있었다. 당연히 인적, 물적 왕래가 활발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류의 중심에 양측 공통의 언어가 자리 잡아 소통수단으로서의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당시 여러 사정으로 일본열도로 건너간 우리 조상들이 쓰던 말들이 오늘날 일본 와고의 뿌리를 이루었다는 주장이 지나친 가설만이 아닌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굴욕적인 일본의 한국병탄 100년을 맞아 저자는 이 책이 일본어의 어원을 찾는다는 뜻에서만이 아니라, ‘일본말 속에 스며든 우리 조상들이 쓰던 말’을 찾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뜻에서도 이 책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맺어진 두 언어 간의 숙명적인 관계를 조명하는 하나의 귀중한 계기를 제공하는 셈이다.

    기파랑 펴냄, 920쪽, 4만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