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맨과 배트맨은 만화 세계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슈퍼 히어로의 이미지', '슈퍼 히어로의 실존 세계', '슈퍼 히어로의 도덕적 의무', '전체성과 슈퍼 히어로의 형이상학' 등 총 4부로 구성 된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속 저자들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 ▲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뉴데일리
    ▲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뉴데일리

    이 책은 슈퍼 히어로를 통해 미국이 메우고 싶어 하는 공백을 목격하는 재미가 있다. 신화와 전설이 없는 땅, 미국. 어느 나라에나 흔히 존재하는 신화나 전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근원적 결핍은 이민 개척의 신화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고, 어딘지 모르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닮은 슈퍼 히어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신화가 그러했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현재의 슈퍼 히어로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슈퍼 히어로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하면서 그 안에 미국 사회와 더 나아가 보편적 인류가 지켜 나가야 할 원칙이 들어 있음을 주장하면서 현대판 신화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 철학적 논의는 대부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종교 철학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무엇이 도덕인가’를 묻지 않고, 곧바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는 점이다. 그 물음에 답하는 과정은 미국 사회가 느끼는 결핍, 그리고 SF적 신화를 통해 이루고 싶어 하는 사회상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소 따분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그리고 다분히 미국적 시각이 곳곳에 등장하는 이 논의가 그럼에도 끝까지 힘을 가질 수 있고,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슈퍼 히어로 이야기를 통해 논의의 여정을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슈퍼 히어로 작가로 활동한 이와 선별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는 우리와 달리 그 기나긴 역사를 곁에서 지켜봤던 오래된 독자이자 마니아들인 저자들의 경력 덕분에 미처 알려지지 않은 슈퍼 히어로들의 크고 작은 ‘비밀’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슈퍼 히어로 팬들에겐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슈퍼 히어로가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왔는지, 그들에게 ‘히어로들의 히어로’인 슈퍼맨은 어떤 존재인지를 목격하는 재미 또한 얻을 수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언제나 ‘영웅’을 기다린다. 그 영웅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늘 변하지만 ‘영웅’이 존재하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듯이 영웅은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불안과 콤플렉스가 만들어 낸 환상일 수도 있다.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는 그 환상의 존재에 인간의 도덕 이상을 부여하며 좀 더 현실적인 존재로 우리 앞에 제시하려고 한다. 만화나 스크린에 갇혀 있던 허구의 인물을 현실로 불러냄으로써 저자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회를, 그 결핍의 공간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얼핏 답을 내놓고 있는 듯 보이지만 최종적인 답은 책을 읽고 난 후 다시금 ‘슈퍼 히어로’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열광하고 애타게 기다리는 ‘영웅’의 가면 속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잠 펴냄, 408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