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간 같다”는 말이 있다. 말이 끊겨 고요하고 적막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사찰은 모름지기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하는 곳이니 맞춤한 비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 해학과 익살을 감춰놓고 은근히 즐겼던 우리 조상들이 이런 ‘거룩한’ 사찰이라고 가만 놔뒀을 리 없다.

  • ▲ ‘불교미술의 해학’ ⓒ 뉴데일리
    ▲ ‘불교미술의 해학’ ⓒ 뉴데일리

    법당 천장에는 용과 족제비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고, 불화 속에는 부처님이 설법을 하는데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장난을 친다. 부처님이 앉아계신 대좌 밑에는 비굴한 용이 잠자리에게 쫓겨 다니고, 사천왕의 다리 밑에 깔린 생령좌는 반성하기보다는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파격적인 모습도 많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불상이 있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어느 사찰 벽화에는 술고래 이태백이 물고기를 타고 나타나 놀라게 한다.
    어쩌면 사찰과 관련 없는 것 같은 이런 조각이나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해학을 주기 위한 화승과 조각장의 재치이기도 하며 또 일반 서민이 법당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여유와 해학은 인도, 중국, 일본의 사찰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 사찰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잘 살펴보면 대웅전에 사는 동물은 손으로 일일이 다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개구리, 토끼, 용, 족제비, 잠자리, 호랑이 등등. 이런 모습은 범부의 눈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조상들은 그림이나 조각 곳곳에 이런 모습을 새겨 여유와 해학을 더해줬다.
    100년도 훨씬 전에 만들어진 신륵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삼존불 후불탱화는 익살의 압권이다. 부처님이 서방극락세계의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엄숙한 순간, 부처님의 제자가 자신이 그린 대나무 그림을 펼쳐 보이며 주위에 자랑을 한다. 주변의 다른 제자들은 서로 보여 달라며 아우성이다. 심지어 한 제자는 잘 안 보인다며 어깨너머로 손을 뻗는다. 물론 부처님께 혼날까봐 곁눈질을 하며 눈치를 보는 제자도 있다. 법문이 설해지는 팽팽한 자리에 잠시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의 ‘장치’다.
    이 책에는 사찰의 전각, 조각 그리고 그림 등 사찰의 구석구석, 곳곳에 남겨져 있는 불교미술의 해학과 익살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다.
    교육용으로 만든 사찰 안내서와는 많이 다르다. 대신 사찰의 구석구석을 뜯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은 사찰에 담긴 이런 염원, 해학, 익살을 경전이나 불교설화 등이 뒷받침해주고 있음을 하나하나 전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강우방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엄숙한 법당에 우리 민족의 순수한 익살이 그토록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불교사찰이 권위적이 아니고 일반 서민과 가까웠으며 동시에 일반 서민이 법당 건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려준다.”며 이 책의 의의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불광출판사 펴냄, 340쪽,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