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박진규가 4년만에 신작 ‘내가 없는 세월’로 돌아왔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기존의 낡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선택한 공간은 ‘서울’이다.

    1988년 서울. ‘첩의 자식’이란 소리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열살 소녀 미령이 엄마의 자살을 목격한 후 계모 손에 이끌려 아버지 집으로 들어서는 데서 시작한다. 그 집에서 계모 명옥, 이복언니 신혜, 노망든 고모 바구미 여사를 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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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없는 세월 ⓒ 뉴데일리

    소설은 차분하게 네명의 ‘그녀’들 삶 하나하나를 밀착한다. 미령은 계모 명옥의 박대 속에서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내다 집을 나오고, 명옥은 남편의 사업자금을 대느라 바쁘고, 신혜는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꼬리를 보며 환상 속의 세계에 빠져든다. 노망든 바구미 여사는 미령에게 생쌀 다섯 알을 남기고 죽는다.

    2012년 서울 대지진 이후, ‘그녀’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서로에게 사랑과 원망과 화해를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둔 채 그들의 시간은 정처 없이 미래로 향하기만 한다.  

    소설 속 2022년의 모습은 모두가 지난 시절의 고통과 불행을 기꺼이 다함께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물론 그 사실은 우리 가족구성원 뿐만 아니라 미령의 가족구성원인 ‘그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모녀. 서로 위안이 되어주지 못하는 부부. 대물림되는 기구한 운명들을 알지 못한 채 그들은 ‘내가 없는 세월’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한다.

    문학동네 펴냄, 376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