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수-조갑제의 대담집 <나는 1류국가에 목마르다>를 읽으면서 우선 떠올린 물음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화두다. 김문수와 조갑제는 그것을 ‘제정신 차리고서...“라고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무엇에 빠져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미신에 빠져들고, 맹신에 빠져들고, 아집에 빠져들고, 선동에 빠져들고, 어쭙잖은 이론에 빠져들고...그런데 김문수와 조갑제는 한 때 무엇에 빠져들다가도 제정신을 퍼뜩 차리는 사람들이다. ”이게 아니지...“하고.

     


    그래서 그들의 대담은 그들의 평생에 걸친 지적(知的) 탈피, 인식의 상승 과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 번도 친북(親北)으로 흘러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회주의자였던 왕년의 노동투사 김문수. 그리고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 초기에 해직기자였던 조갑제. 이들의 사고(思考)는 그러나 거기서 정지하지 않았다. 초보적 인식에서 확신의 단계로, 거기서 자기수정의 성찰적 단계로, 그리고 다시 더 올라가, 실천을 통한 검증의 단계로.

     


    이들이 이럴 수 있었던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한 마디로 그들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나만의 고독한 올곧음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동굴의 우화, 시장의 우화를 무조건 따르지 않는 데서 오는 세상의 박해와 편견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공리공론(空理 空論)을 버리고 온몸을 던져 구체적인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탁상의 이론가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어딘가 시답지 않은‘ 공허함과 위선이 없다.

     


    우리는 지난 61년을 통해 건국, 6.25 동란, 산업화, 민주화, 민주화 이후(post democratization)의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 이 격동의 61년은 그 때 그 때의 젊음들에게 엄청난 선택을 요구하곤 했다. 대한민국 건국이냐 그 반대냐, 좌익이냐 우익이냐 중간파냐, 산업화 먼저냐 민주화 먼저냐 아니면 그 둘의 동시 병행이냐, 자유민주 시장경제와 국제화냐, 아니면 사회주의-좌파민족주의-반(反)세계화냐...의 양자택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선택에서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들 3대가 기구한 인생유전과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곤 했다.

     


    이 반복되는 시행착오 때문에 숱한 한반도인(人)들이 자신의 인생을 기구한 모습으로 굴절시키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볼 때 인생을 아예 시궁창에 내던져 버린 꼴을 만들기도 했다. 개항 100년을 통해 쌓인 이런 한반도인들의 원혼은 아마 3천리 방방곡곡의 하늘을 온통 뒤덮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이 업장(業障)을 더 이상 우리의 후손들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세대를 마지막으로 이 업보의 악순환을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해방후 우리 현대사 61년에서 우리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야 한다. 김문수와 조갑제의 대담은 그 결론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현대사 61년에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건져 내야 할 것-그것을 이 두 당대인은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그 동안 한반도에 유입되었던 숱한 가설들 가운데 오직 대한민국 헌법정신만이 유일하게 성공한 삶의 질서이자 가치의 구현이었다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물을 필요조차 없는 압도적인 결론으로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해방공간의 혼미에서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것, 그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정부를 세운 것, 그 국가와 국민의 노력으로 자유민주 정치질서와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한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것-이 장엄한 성공의 현대사를 힘차게 끌어안는 것으로 지난 61년에 걸친 한반도인들의 고난에 찬 과도기를 끝내자는 것이다.

     


    김문수와 조갑제 두 사람은 다 고뇌하고 헌신하고 분노하고 모색하면서 긴 여정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보수든, 진보든, 발전이든, 인권이든, 삶의 질(質),이든 선진화든, 그리고 21세기 한국이든...모든 유의미(有意味)한 명제들이 대한민국 헌법질서라는 지붕 아래 함께 포괄될 수 있고, 오직 그 지붕 아래서만 성립가능하다는 것을 명료하게 결론짓고 있다.

     


    민주화와 보수-진보를 위해 헌신한 것도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라는 큰 규범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그것을 언덕으로 해서 가능했다. 산업화되고 지구화된 한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 역시 대한민국 헌법 덕택이었다. 전체주의, 1당 독재, 1인 전제(專制), 쇄국주의, 자유 인권 억압의 헌법 아래서는 보수도, 진보도, 민주화도, 산업화도 모두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일각에서는 그러나 여전히 이 자명한 사실이 통용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선동과 기만과 미신에 휩쓸려 방황하고 있다. 이 어둠의 혼미에 대해 김문수 조갑제 대담은 한 줄기 밝은 빛을 던져줄 것이다. 진실의 빛은 사실을 드러내고, 사실은 진실을 입증한다. 그리고 사실과 진실만이 아름답다. 울리는 꽹가리 같은 말장난 아닌, 김문수 조갑제의 직언(直言) 직설(直說)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