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세상을 바라보길 원하는 것처럼 네 자신을 변화시켜라.” (Be the change that you want to see in the world.)

    지난 13일 약 400 여명의 대학생들로 가득 채워진 서울대학교 강의실에서 아쇼크 코호슬라(Ashok Khosla)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재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조국을 독립으로 이끈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날 ‘캠퍼스 환경지킴이’ 선포식을 가진 대학생들에게 변화의 중심에 설 것을 촉구했다.

  • ▲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아쇼크 코호슬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재 ⓒ 뉴데일리
    ▲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아쇼크 코호슬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재 ⓒ 뉴데일리

    “나의 꿈은 멋진 스포츠카 페라리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이어나갔다. “부모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고, 명문대학을 나와 안정된 삶이 보장되었지만 끝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며 “며칠을 잠을 못자고 고민한 끝에 내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은 강의실이 아닌 현장임을 깨닫고 나의 기득권을 과감히 던져버렸다.”고 말했다.

    1940년 인도 카쉬미르 지역에서 태어난 코호슬라 총재는 올해 우리 나이로 70이 되었지만 실제 그의 외모와 목소리는 50대 중반 정도로 밖에는 안 보인다. 영국 최고명문 캠브릿지 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후 미국 최고명문 하바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코호슬라 총재는 곧바로 하바드대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에게 환경학을 강의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에 사직서를 내고 모국 인도의 초대 환경기획처(Office of Environmental Planning and Coordination) 처장으로 부임했다. 19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산업적으로 한참 뒤떨어진 개발도상국이었던 인도에 환경부서가 신설된 것도 흥미롭지만 하바드대 교수직을 뿌리치고 모국으로 달려간 그의 결단도 당시 미국사회에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스포츠카 페라리’에 대한 꿈을 접었다.

    1976년부터 6년간 유엔환경프로그램(UNEP, UN Environmental Program) 이사로 재직한 그는 1982년 친환경 기술개발을 위한 비정부 민간기구를 인도에 설립한 데 이어 현재 IUCN 총재로서 로마클럽에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은행(World Bank), UNEP, 인도 정부의 고문직도 함께 맡고 있다. 활동범위나 위상에 있어 사실상 ‘세계 환경대통령’인 셈이다.

    IUCN은 전 세계 자원 및 자연보호를 위하여 1948년에 국가, 정부기관 및 NGO의 연합체 형태로 창설되었으며 1992년 Rio 생물다양성협약 이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증대된 세계 최대의 환경단체로 84개 국가회원과 140개 국가의 111개 정부기관 및 870개 이상의 NGO가 가입되어 있으며, 11,000여명의 전문가 그룹이 6개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IUCN 이사로 활동중인 김성일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60년의 역사를 가진 IUC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규모가 큰 환경기구”라며 “환경문제에 있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코호슬라 총재를 이번에 한국이 맞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행운”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4박5일에 걸친 그의 ‘살인적인’ 방한 스케줄을 보더라도 코호슬라 총재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2009 세계환경포럼(GEF) 개막식 연설, 기후변화센터 특강, ‘세계 캠퍼스 환경의 날’ 선포식 특강 등으로 분주했으며, 이 기간 동안에 면담한 인사의 면면 또한 범상치 않다. 한승수 국무총리, 김형국 녹색성장위원장, 이만의 환경부장관, 이장무 서울대 총장, 김태환 제주도지사, 정광수 산림청장,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의원(고승덕, 김효석, 원혜영, 전현희) 등 그야말로 전방위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틈틈이 언론과 인터뷰도 가졌다.

    이 날 기자와 함께 동행하는 가운데 아쇼크 총재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현재의 지구는 빈곤문제, 오염문제, 기후변화 문제, 생물학적 멸종 문제, 경제 위기 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전 세계적 재앙, 사막화 현상, 동식물 멸종위기 등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 식량, 주택 등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토지로 환산한 생태 발자국 지수(Ecological Footprint)가 이미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기준을 25% 가량 초과하고 있는 반면 후진국에서는 극심한 빈곤과 식량난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들이 뿌리 채 뽑히고 있고, 멸종위기 동물들에 대한 사냥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지구는 선진국과 후진국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죽음과 멸망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쇼크 총재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다”며 “녹색성장은 전 세계적 기후변화로 인해 위기에 처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새롭고 바람직한 경제성장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친환경 신기술 개발, 탄소배출의 제로화, 수요자 측면의 관리, 에코시스템 구축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IUCN에 가입하여 활동한 역사는 대단히 짧지만 조직 내에서의 공헌도는 대단히 뛰어나다”며 “한국 과학자들의 리더십과 열정에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 ▲ 강의하는 아쇼크 코호슬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재 ⓒ 뉴데일리
    ▲ 강의하는 아쇼크 코호슬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총재 ⓒ 뉴데일리

    그러나 이번 방한 기간 중 아쇼크 총재의 진면목은 대학생들을 향한 특강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자신들의 수년간 계속된 봉사활동과 ‘환경 지킴이’ 운동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모인 수많은 학생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That is not enough!)”는 그의 질책으로 인해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날 학생들이 발표한 빈 강의실 소등, 컴퓨터 전원 뽑기, 절수, 1회용품 금지, 쓰레기 분리수거, 환경 캠페인 홍보 등 ‘캠퍼스 지킴이 10계명’에 대해 그가 “너무 소극적이고 안일하다”며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아쇼크 총재는 “인간이 지구의 적(enemy)이 되어버렸지만 지구의 해결책(solution) 또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며 “먼저 인간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대학생들에게 “좋은 집과 비싼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겠냐? 맛있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단할 수 있겠냐? 너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바뀔 수 있겠냐는 편견과 조롱을 극복할 수 있겠냐?”고 학생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매년 이 지구상에 7500 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중 기초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이 6000 만 명이 넘는다.”며 “엄청나게 많은 미래의 아인슈타인과 퀴리 부인이 역사의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의 지금까지의 활동은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분노가 없다면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빈곤, 동식물 멸종, 오염, 기후변화, 인종갈등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 바로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탐욕, 그리고 자기중심적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 한걸음도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적지 않은 대학생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쇼크 총재는 대학생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분노와 용기가 결합될 때에 참회와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의 분노와 용기야말로 우리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강의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