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나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모두에게 평안을 가져온 일이었다.

     와이프는 '당신 빨갱이'라는 욕을 듣지 않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편해졌고,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편해졌다. 처제는 나를 보지 않고 독일로 떠났지만, 처제를 보았다면 또 그 말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잘 된 일이었다.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고시원에 나와 궁상을 떤다는 게 어느모로보나 육체적으로는 고달픈 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적으로는 홀가분하고 편안했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야 다 편한 것이었고, 형통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기치않은,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쓸 수 없다고 여겨졌던 탈북자 소설을 조금씩이나마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집을 나온 것을 크게 기뻐하는 바가 있었다면, 이는 이 때문이었다. 탈북자 소설을 조금씩이나마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단히 기뻤고, 탈북자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영원히 집에 안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내가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데에 와이프는 이렇다저렇다 말이 없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오라고도 하지 않았고, 계속 나가 있으라고도 하지 않았다. 집을 나온 지 벌써 보름이 지나가는데도 와이프한테서는 연락 한번 없었다. 나 역시 그런 와이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와이프는 '빨갱이'라는 욕을 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은 건데, 와이프는 내가 그런 욕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안 섰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와이프가 내게 한번 연락조차 않는 것에 대해 야속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상태가 차츰차츰 나아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와이프가 수시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면 나의 상태가 차츰차츰 나아져가지는 결코 못하였을 것이었다.

    와이프를 비롯해 와이프의 처갓집 식구들을 '빨갱이'라 욕해대는 것은 분명 문제였다. 심각한 문제였다. 물론 와이프의 처갓집 식구들이 그런 빌미를 준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고, 몰지각한 행태였다. 그러나 이건 빙산의 일각이고,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진짜 심각하고 우려할 문제는 이거라고 할 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온통 다 빨갱이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와이프와 와이프의 처갓집 식구들만이 빨갱이로 보이는 게 아니었다. 세상이 온통 빨갱이들에 의해 포위당하다 못해 점령당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빨갱이들에게 점령당했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었다. 세상이 빨갱이에 점령당했든 퍼랭이에 점령당했든 나는 아무래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게 나와 나의 가정에 해가 되지 않고 득이 되기만 한다면.

    요는 빨갱이가 점령한 세상이 올바름을 상실한 것처럼 보여진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점령한 빨갱이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빨갱이에 점령당한 세상이 올바름을 상실하고 있다는 걸 가르쳐준 게, 탈북자들이었다. 빨갱이들에 점령당한 세상에서 탈북자들은 철저하게 외면받고 소외당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밖에 없는 게 탈북자들이 탈북자가 된 게 빨갱이에 점령당한 북한사회의 올바르지 않음 때문이고, 북한을 탈출해 나와 정착치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고 있는 게 또한 빨갱이에 점령당한 세상의 잔혹한 인심 덕분이기 때문이었다.

    요즘들어 내가 왜 빨갱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게 되었는지, 이 정도면 이해가 갈 만한 일이기도 하겠다. 세상이 올바름을 상실하고 있는데,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욕은 더더욱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빨갱이에 점령당한 세상에서 빨갱이라고 욕을 해대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스스로를 치명적인 위험 가운데에 노출시킬 작정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어리석은 짓이었다.

    내가 바로 이 때문에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못 쓰고 있다면, 너무 나간 변명이 될까. 너무 나간 변명일 수도 있으나, 근거없는 변명만은 아닐 수도 있다. 내가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못 쓰고 있는 진짜 이유가 이건 아니지만, 이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만도 할 수 없겠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탈북자들에 대하여 무관심할 뿐만아니라 적대감마저 지니고 있는데, 나 혼자 열을 내어 그들에 관한 얘기를 한다는 게 상당히 우습지 않느냐 하는 거다. 나마저 탈북자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외면당하고 적대시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씨도 안 먹힐 얘기란 사실 애시당초부터 꺼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입만 아프고 말 얘기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나 너무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었다. 지난 오년여간 조사하고 자료를 모으고 생각하고 한 게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 이제와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래 내가 생겨먹기를 씨도 안먹힐 얘기를 하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줄 때보다 영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얘기하고 싶은 의욕에 사로잡히는 이상하게 삐딱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탈북자 소설은 내가 쓸 수 없는 소설이라는 걸 얼마전 알게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이를 못놓고 벼르고 있는 이유였다.

    하여간 나는 집을 나와 고시원에 쳐박히게 된 데에 불만이 없었고, 많은 만족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집을 나와 고시원에 쳐박힘으로써 오히려 뜻하지 않은 두가지 행운과 맞닥뜨리게 되었노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고 있었다.

    한가지는 세상이 빨갱이에 점령당하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올바름을 상실한 상태는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올바름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씩이나마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게 이 깨달음에서 도움을 받은 탓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의 행운은 와이프로부터의 자유였다. 와이프로부터의 자유가 이렇게 만족스럽고 기꺼운 거라는 걸 전에는 결코 몰랐던 일이었다. 전에 나는 와이프와 별거해 본 적이 없었고, 이게 처음이었고, 별거의 유용성을 미처 몰랐었다. 그동안 나는 지나치게 와이프한테 자유를 박탈당한 채 억압당해 온 게 아닌가,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나는, 그동안 지나치게 와이프로부터 억압당해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행운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불쑥 불청객이 나를 찾아왔고, 그 불청객이 나의 이 행운을 방해하고 앗아갔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조카 성규가 나를 찾아왔다. 조카라고는 하였지만, 성규는 나하고 여섯 살 밖에 차이가 안나는, 어찌보면 형제같은 조카였다. 그만큼 우리집안 장손인 사촌 형님이 나이가 많다는 얘기였다.

    성규가 나를 찾아온 것은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었고, 딱히 내가 성규를 봐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규의 방문을 받고 나는 정말이지 뜻밖이었는데, 아무도 만나지 말고 세상에 대한 내 화를 정리하자 생각하고 집을 나온 텃수였던 탓에 더 그랬던 듯 했다. 솔직히 나는 성규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는데, 내 감정 추스르기에 방해를 받았다는 느낌 탓이었다.

    그러나 성규를 탓하지는 않았다. 내가 탓했다면, 그건 와이프였다. 내 사정을 뻔히 알고 있을 와이프가 왜 성규에게 내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느냐 하는 거였다.

    세상의 난잡함과 불쾌함을 피해 마음을 추스르겠다고 집마저 나온 나의 사정을 잘 안다면, 와이프는 나에게 사람을 보내는 이런 짓을 저질러서는 안되었다. 이건 여전히 나를 세상의 난잡함과 복잡함 속에 가두는 일이었으니까. 와이프는 내가 그녀를 '빨갱이'라고 욕하고 세상이 빨갱이에게 점령당했다고 흰소리를 해대며 불안해하는 나의 모습이 아무래도 좋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더는 나와 살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단 말인가.

    나는 성규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준 와이프의 처사가 도시 불만이었지만, 그러나 그 불만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머물고 말았다. 와이프에게 나의 위치를 알린 게 결국 나였다는 것이었다.

    와이프에게 내가 ○○고시원에 있다는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면, 와이프가 성규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의 위치가 성규한테 알려지고 노출된 그 궁극적인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책임의 귀속지가 그렇다 하더라도 나에게도 변명은 있었다. 어떻게 와이프에게 나의 위치를 알리지 않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는 와이프의 남편이었고, 와이프는 말 그대로 나의 와이프였다. 나는 남편으로써의 의무를 다한 것 뿐이었다. 비록 별거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헤어진 건 아니므로 남편으로써의 의무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의 외출이 와이프와 완전한 결별을 꿈꾸고서 행해진 것이 아닌 한 말이다.

    하여간 성규의 방문은 내게 놀라울 정도로 뜻밖이었고, 귀찮게 생겼구나 했는데, 정말이지 귀찮아지고 말았다.

    성규가 나를 찾아온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큰 문제가 있어서였다. 또 한번 정말이지란 표현을 써야겠는데, '정말이지' 그건 큰 문제여서, 농사도 그렇고 다니던 면서기마저 때려치고 당장 시골서 서울로 올라와야 할 정도로 큰 문제였다. 나는 그런 큰 문제를 갖고 성규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찾아왔다는 게 황당했다.
     나와 성규는 결코 친하지 않았다. 예전에 얼마간 같이 생활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에도 성규는 성규였고 나는 나였다. 집안 어른들은 나와 성규가 많이 닮았다고 얘기들을 한다고들 하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나나 성규나 젊은 시절 몹시 심하게 방황들을 했다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실상은 판이했다.

    성규는 은근히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방황을 했다고는 해도 자신은 그 시절을 잘 극복해 농사일을 하면서 면서기를 나가는 착실한 생활인이 된 반면, 나는 젊은 시절의 그 방황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여전히 그 속을 헤매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성규에게 이름도 날리지 못한 채 글을 쓴다는 건 방황처럼 여겨지는 듯 했다. 그것도 보통 방황이 아닌 지나치게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방황으로 말이다. 성규가 대놓고 내게 말을 하지는 않지만, 나를 무시하는 성규의 태도를 가만 두고 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느껴지곤 한다. '당숙, 이젠 좀 철 들 나이도 되지 않았나요.'

    성규를 보면 여지없이 언짢아지곤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지난 사월의 성규의 결혼식에도 초대를 받아놓고도 가지 않았다. 핑계는 결혼식장이 너무 멀고, 바빠서라는 것이었지만, 진짜 속내는 성규를 보고 언짢아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물론 와이프도 가지 않았다. 내가 안 가는데 자신이 왜 가느냐는 게 와이프의 변이었는데, 얼핏 들으면 맞는 말이었지만, 곰곰 따져보면 꼭 맞는다고만도 할 수 없는 얘기였다. 나는 성규를 만나면 기분이 언짢아져 안가지만, 와이프는 성규를 만나도 기분이 언짢아지지 않고 언짢아질 이유도 없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