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에 관한 얘기를 좀 써보자 마음먹은 게 상당히 오래다. 한 사,오년쯤 전부터 갖기 시작한 생각이니까. 

    그동안 탈북자에 관한 꽤 많은 자료를 모았고, 와이프가 일하는 사회복지관을 통해 탈북자 청소년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인터넷상을 통해 친분을 갖게 된 탈북자들도 몇 몇 있게 되었다. 이만한 자료라면 나는 벌써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거나 쓰고있는 중인 게 정상적이라고 할 만 하겠다.

    사실 몇 편인가, 탈북자들에 관한 소설을 쓰긴 했다. 더러는 잡지에다 발표를 하기도 했었다. 반응은 영 신통치 않은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탈북자들에 관한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탈북자라는 소재는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있는 소재가 못되는 듯 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탈북자들에 대해 일종의 편견이나 경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내가 발표한, 탈북자에 관한 몇 편의 단편소설들이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몹시 실망했던 게 사실이다. 이래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내 자신에 대한 한계, 또 한차계의 피치못할 실패라는 씁쓸함도 물론 한 몫 하였을 것이었다. 발표한 단펴소설들을 묶어 책을 내 볼까도 하였는데, 의사를 타진한 어떤 출판사도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지 않아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소설이 출판사로부터도 외면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출판사가 자선사업하는 봉사단체도 아니고. 거절당하는 당자인 나로써야 몹시 불쾌하고 기분나쁜 일이긴 하였지만.

    이 일로 내가 몹시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탈북자에 관한 본격적인 소설을 못 쓰고 있는 게 이 일 때문은 아니다. 이 일로 인한 좌절감 때문은 아니라는 거다. 나는 여전히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써야 한다는 강한 의욕 이상의 의무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난 사,오년 간을 부대끼며 살아온 정성과 노력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얘기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나름대로의 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쓰고 싶어하고, 써야 한다는 오기마저 지니고 있으면서도 내가 탈북자에 관한 본격적인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고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탈북자들에 대해 편견이나 경계심을 갖고 있다거나, 내가 이런 얘기를 하다 좌절감을 맛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탈북자에 관한 본격적인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쓸 수 없어서다. 왜 쓸 수 없느냐고? 왜 쓸 수 없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내 가장 속 깊은 프라이드와 관련된 문제이니까, 말할 수가 없다.

    탈북자에 관한 본격적인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정말이지 나는 허탈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하고 만 듯한 기분이었다. 반드시 당첨될 거라 믿고 오년여 가까이나 꼭 틀켜쥐고 있던 복권이 어느날 갑자기 꽝으로 판명나 와장창 하고 무너져내린 그런 느낌이었으니, 내가 갈피를 못잡고 허탈해지고 만 것은 당연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겠다. 나는 일종의 허탈상태,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말았는데, 허깨비 같았다. 유체이탈 상태에 빠져들었다고나 할까. 나의 상태를 놓고 볼 때, 내 자신이 판단컨데,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사람의 상태도 지금의 나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허깨비같은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너 빨갱이지."

    나는 다짜고짜, 와이프에게 이렇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와이프의 요즈음 행태가 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는데, 그 마음에 안 든다는 걸 이렇게 빨갱이 라는 한마디로 축약해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빨갱이라는 나의 독설을 듣고 아내는 무척 당황했던 것 같았다.

    그 큰 눈이 더욱 커지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독설을 들었다는 식으로, 반문해 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빨갱이라니. 뭐가 빨갱이라는 거야."
    "넌 빨갱이가 맞아. 그렇지않다면 왜 그 놈을 지지한 거야."
    "누가 누구를 지지했다는 거야?"
    "그 놈 말이야."

    와이프는 나의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자꾸 그 놈이 누구인지 밝히라고 되묻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 놈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내가 그 놈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도 와이프가 당연히 알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놈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자, 와이프는 엠한 생사람을 잡는다고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빨갱이라는 지칭에서 너무 심한 모욕감을 느끼는 듯 했다.

    "또 한번 내게 빨갱이란 욕을 하면 그땐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그따위 황당한, 시대착오적인, 말도 안되는 표현을 쓰고 있는 거야."

    그러나 나는 굽히지 않았다. 황당한, 시대착오적인, 말도 안되는 그 표현을 끝끝내 고집했다. 그것이 와이프를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듯 싶었으니까 말이다. 와이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 궁극의 의도였다. 요즈음 와이프의 행태가 내 마음에 쏙 들지 않았으니까.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하는데 뭐가 어떻다는 거야. 그럼, 누구처럼 레디앙이라고 불러줄까. 황당하지 않고,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말도 안 되지 않게 말이야."

    와이프가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내가 왜 빨갱이라는 거지?"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몰라. 말해 봐."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는 것은 이 대목에서는 대답하는 것보다 대답 안하는 게 더 효과적이리라는 생각에서였지만, 보다 더는 할 말이 궁색해서였다. 와이프의 요즈음 행태가 마음에 안들어 빨갱이라고 욕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와이프가 빨갱이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즈음 나는 한가지 얄궂은 습관이 붙어 있었는데, 마음에 안드는 일이나 인간과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빨갱이라느니 빨갱이스럽다느니 하는 욕을 내뱉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습관을 붙이게 되었는지 똑 부러지게 그 이유를 밝힐 수는 없지만, 이게 그간의 탈북자에 대한 나의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만큼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요즈음 와이프의 행태에 대해 내가 썩 마음내켜하지 않게 된 것은, 와이프가 변한 게 없다는 점에서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몇 년새 나는 아주 크게 변했는데, 와이프는 별로 아니,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변하는데 옆에 있는 누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