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 없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 ⓒ 뉴데일리
    ▲ 팔 없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 ⓒ 뉴데일리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사랑을 할 줄도 안다고 우리는 이제껏 아이는 자주 안아 주어야 따뜻한 감성을 지닌 아이로 자라고,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여러 가지 조기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능력을 배가시켜야 모든 것에 만능인 사회인으로 자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모든 것이 부작용을 일으켜 우리 아이를 망가뜨리고 있다면? 이 책은 바로 이 부작용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이며,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가 꼭 점검해 보아야 할 자녀교육에 관한 소중한 지도서다.

    2004년 봄, 저자 후지와라 토모미는 자녀를 명문 초등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일본 전역에서 몰려드는 유명한 학원, 렉터스 교육연구소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저자는 팔 없는 사람을 그린 아이들의 그림을 발견한다.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에도, 항상 자신을 돌봐주는 엄마의 모습에도 팔을 그리지 않은 아이들. 그들의 눈에는 사람들의 형상이 얼굴과 몸통만 있는, 마치 블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블록 인간으로 보이는 것일까. 게다가 그들에게는 사람의 모습뿐 아니라 구불구불 바다로 흘러가야 할 강의 모습도 네모로 혹은 물방울 모양으로 왜곡되어 보이는 것일까. 이렇게 아이들의 그림이 망가지고 있는 원인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물음에서 이 책은 시작되고 있다.

    저자는 아이들의 그림만 망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도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하나, 둘의 의미도 모르고, ‘5’까지 셀 수도 없으며, ‘중앙’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 속출한 것이다. 각종 전문서적과 조사 보고서, 부모들과 육아현장에 있는 교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그 원인을 ‘스킨십 육아’의 도입에서 찾는다.
    아이를 지나치게 과잉보호하는 스킨십 육아의 확대로 아이들은 또래집단과의 놀이문화를 상실한 채 조기교육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이들의 정신을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팔 없는 사람을 그리는 아이들, 네모난 강을 그리는 아이들, 모국어를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오로지 ‘지금’밖에 없다. 현재밖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미래를 강요하며 과잉보호와 지나친 조기교육을 일삼는 것은 아이들의 자립을 저해하고 최상의 학교인 ‘아이들 세계’를 해체하는, 우리 사회가 자신도 모른 채 상냥한 목소리로 저지르고 있는 ‘아동학대’라고 저자는 외치고 있다.
    어쩌면 이는 일본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조기교육 열풍으로 아이들은 쉴 틈이 없고, 부모들은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기러기 부모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물론 이는 자신의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부모가 희생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행하고 있는 자녀교육의 방법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역효과를 내어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우리 아이들과 사회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기파랑 펴냄, 240쪽, 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