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탈신화 시대의 신화들 ⓒ 뉴데일리
    ▲ 탈신화 시대의 신화들 ⓒ 뉴데일리

    오늘날 신화는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서점가에서 대박행진을 이어갔던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아시아, 일본, 이슬람 그리고 머나먼 켈트의 신화까지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 책들을 통해 신화를 읽고 있다. 그러나 그들 신화는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착색되어 있다. 신화를 근원적인 것으로 혹은 우리가 돌아가야 곳으로 설정하는 지형적 사유는 그야말로 신화적이라 할 수 있다. 돌아가야 할 것에 대한 그리움은 낭만적이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때로는 신화가 하나의 정전으로 유포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신화 속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하고, 신화에 등장하는 신은 인간과 유비적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신들의 신성조차도 휴머니즘에 용해되고, 신화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지고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계몽적 담론이 된다. 이래저래 신화는 이 시대의 삶에 유익한 것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가 유포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들 신화서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신화에 접근한다. 책에 등장하는 신화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일종의 기호작용을 일컫는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신화는 문화 곳곳에 잠재해 있고, 우리가 그것을 포착하는 순간, 비로소 그 신화성을 드러내는 대상이다. 이처럼 신화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저자는 ‘탈신화’라고 명명한다. 다시 말해서, 신화가 일차원적 독서의 대상인 ‘이야기’임을 그치고 하나의 문화 기호학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탈신화’의 과정은 텍스트를 통해 그 신화적 기호작용을 기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신화는 뮈토스에 그치지 않고, 뮈토스와 로고스 간에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기호작용의 하나로 파악해야 하며, 뮈토스와 로고스가 극대화되면서 새로운 뮈토스가 생겨나는 생성작용이라는 것이다. 이는 종전에 뮈토스와 로고스를 구분하고, 신화를 로고스에 대립되는 뮈토스로 본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신화를 단지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생성하는 사유작용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신화를 돌아가야 한 근원이나 인간성의 깊은 본질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오늘날의 낭만적 경향 자체를 바로 신화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신화는 영원한 신화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그 신화성을 드러내는 탈신화의 과정에서 포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탈신화 시대’란 어느 특정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신화가 그것의 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반영된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저자는 탈신화가 문화적 텍스트들에서 신화적 기호작용을 읽어냄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읽기’를 통해 신화가 말하는 기원을 추적한다. 신화적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지금까지 주로 역사적 심리적인 작업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저자가 말하는 신화의 기원은 기호학적 기원을 말한다. 따라서 신화읽기에 일반화 된 환원론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기원이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통해 생성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발생은 기원으로부터 이루어지는데 발생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므로, 우리는 무수한 발생의 사건들을 기술할 수 있고,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발생기호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 책의 1부에서 저자는 이러한 방법론을 위한 가설적 모델을 제안하고 2부에서는 신화의 발생을 기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분석의 대상으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 샤머니즘 제의인 굿, 굿에서 생성되는 여러 기호들, 『삼국유사』와 『규원사화』에 실린 단군에 관한 기록들을 설정한 저자는 신화적 기호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을 기술한다. 지금까지 신화로 간주되어 온 좁은 의미의 이야기보다, 여러 문화현상들을 통해 훨씬 더 포괄적인 신화적 이야기를 읽어 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신화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들과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신화가 단지 전해 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의 수많은 텍스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기호작용의 하나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신화는 우리의 삶에 낭만적인 의미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의 ‘지나침’ 혹은 ‘과도함’으로 인해 삶에 위험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화가 갖는 신화성을 지속적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그것을 탈신화화해야 할 인문학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파랑 펴냄, 384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