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 사설 '기륭전자, 1095일 농성 기록 세우고 노사(勞使) 함께 망하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울 금천구 디지털산업단지 내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조가 벌여 온 농성이 22일로 1095일이 지났다. 노조원 두 명은 병원에 실려간 채 73일째 단식하고 있다. 노조는 3년 넘게 고공시위, 점거농성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농성장에서 죽겠다고 관(棺)까지 농성천막에 들여다 놓았다. 농성장엔 매일 노조, 사회단체, 정치권에서 응원단이 몰려오고 있다.

    농성은 2005년 7월 비정규직 파견직원 70명이 정규직 고용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파견회사가 32명을 해고하자 노조는 부당해고라며 기륭전자를 상대로 7건의 소송을 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법원은 "기륭전자는 해고 당사자가 아니다"며 부당해고 책임을 기륭전자에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3년 농성은 회사와 노조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내비게이션, 위성라디오를 만드는 기륭전자는 2004년 매출 1700억원에 220억원의 흑자를 봤다. 2007년엔 매출이 447억원으로 4분의 1로 줄고 수지는 269억 적자로 돌아섰다. 대주주는 세 번, 대표이사는 네 번 바뀌었다. 회사는 작년 10월 생산라인을 아예 중국으로 옮겨 버렸다. 정규직 170명 가운데 75명은 올 봄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비정규직은 급여 수준, 근무 환경, 고용 조건에서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도 농성 시작 당시 월 급여가 최저임금에서 10원 더 많은 64만1850원이었다고 한다. 그런 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같은 생산라인에 섞여 일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분이 쌓일 만하다. 6월과 7월 노사가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정규직과 노조 강경파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노사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벌어진 감정의 골이 화합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21일 조합원 1300명을 기륭전자 앞으로 동원해 동조 시위를 했다. 진보신당은 기륭전자의 해외바이어들에게 불매(不買) 촉구 이메일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좌파 노동계와 정치권은 회사와 비정규직 농성자를 살리겠다는 것보다 어떻게든 기륭전자 사태를 이용해 먹겠다는 생각뿐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기륭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만든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비정규직 갈등은 곳곳에서 여전하다. 정부와 국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딱한 처우를 개선시키면서 기업 활력도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